예수쟁이들과의 대화록

장덕재 장로님께

sarnia 2006. 9. 4. 06:03

장덕재 장로님께(2006 년 7 월 3 일)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동안 많은 글들이 올라와 댓글을 달기가 좋지 않으므로 새 창을 열고 제 의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자매체인 점을 감안, 가급적 님이 하신 문제제기만을 중심으로 짧게 답변 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입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제가 올린 일련의 글들은 님께서 짐작하시듯 한 분야전문가(목회자나 신학자)가 “튀어보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초보 단계에 있는 한 평범한 기독교 신자가 내는 하나의 목소리이자 실존적인 고민이고 질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긴 저는 목회자나 신학자로서 ‘튀어보려는’ 분들을 존경하는 편이긴 합니다. 개인적 동기에 관계없이 항상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런 분들에 의해 어떤 분야든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예수도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십니다.

“평생을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오신 많은 신자들을 생각해 보고 글을 올렸느냐”는 님의 질문에 내재돼 있는 의미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치 한 평생 예수를 주님으로 바라보며 살아 온 분들은 그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외부로부터의 어떤 도전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그런 분들의 停的인 신앙도 존중합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을 남에게 무례하게 강요하는 경우가 아닌 한 그 분들의 마음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하면서 제 의견을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인간이 하나의 믿음체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AD325 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정경(Cannon)으로 채택된 오늘날의 성서만 해도 문자주의적이든 자유주의적이든 이렇다 하게 해석할 만한 문헌학적 고증학적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는 데는 학자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는 줄 압니다. 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적 언어(사도행전 4:12)대신, 예수님이 직접 하셨다는 말씀(요한 14:6)을 인용하셨다 해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님께서 인용하신 두 구절의 성서기록을 가지고 이 취약한 믿음으로의 길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노력하고 그러면서 또 헤매고 있는 양들을 문제없이 단박에 ‘유일한 진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설마 안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른바 ‘진보’ 쪽도 마찬가지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고 다원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캐나다의 진보 교단 역시 ‘자기들이 장덕재님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보다 낫다’ 고 주장한다면 저는 거기에 대해 단연코 아니라고 반박할 것입니다.

제가 9 년 전의 캐나다 연합교단 사건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모습 속에서, 아직 알 수 없는 그 무엇 앞에 선 자들의 ‘겸손함과 솔직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가풍 속에서 자라 거꾸로 ‘생래적 反신론자’가 됐었던 저를 다시 “하나님, 우리 서로 화해하고 다시 같이 놀까?” 하는 정도로 까지 되돌려 놓은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들의 모습은 제가 보기에 종교적 교리를 종교권력유지를 위한 반동이념화 하여 신자 개개인의 탐구와 질문의 자유조차 박탈해 버린 저 남쪽의 근본주의자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근본주의자들의 반동이념이 순수한 신앙과는 별 관계가 없는 종교권력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어려운 탐구와 고민을 하고 있는 다른 쪽을 향해 신신학이니 자유주의니 사탄의 주술이니 하는 온갖 용어를 동원하여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을 보며 갈 데 없는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질문드릴 차례입니다.

정작 많은 답변이 있을 것 이라고 제가 예상했던 글은 제 561 번 글 ‘하나님이 창조주입니까? 설계사입니까?’ 이었습니다. 보수기독교의 전통적 성서해석방법에서 완전히 일탈한 The Theory of Intelligent Design이 미국 보수기독교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현상을 한국의 보수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 궁금해서 드린 질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무오’를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분들로 질문대상을 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저는 초신자입니다. 성서나 종교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이 분야의 문외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종교문제에 관해 올리는 글은 ‘선언’ 보다는 ‘질문’이 주를 이룹니다. 저는 님께서 성서무오를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분인지 아닌지는 잘 모릅니다. 님께서 제 글을 가리켜 ‘잘못된 글’이 아닌 ‘성급한 글’이라는 표현을 해 주셨기 때문에 님의 사상에 대한 어떤 예단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기왕 제게 글을 주셨으니 무례가 안 된다면 장덕재님께 이 질문(지적설계이론에 관한)을 다시 드려볼까 합니다. 물론 답변여부는 님의 자유이고 다른 분의 견해를 옮겨주셔도 상관없습니다.

님의 지적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제가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캐나다에서 강현 드림

 

장덕재 장로님께 드리는 두 번째 편지 (2006 년 7 월 7 일)

 

 

주일이 지난 후에 올리려다 너무 늦게 답변에 대한 인사를 드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올렸습니다. 제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 유익한 말씀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토론마당에서 제 소개를 하거나 상대방의 배경에 대해 묻지 않는 편입니다. 불필요한 편견의 소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로님께서 자신에 淪?소개를 해 주셨으니 저도 간단하게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한신대 경영 81학번입니다. 고 문익환 선생님이 공동의장으로 계셨던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기관지 ‘민중의 소리’ 제작에 참여했었고, 1989 년 1 월 통합된 재야단체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편집실 간사로 근무했던 게 한국에서 한 사회생활의 전부입니다. 1990 년 캐나다로 이민해서 범죄학(Criminology)을 공부하다가 2 년 반 만에 집어치우고 캐나다 회사에 다니며 가끔 동포신문 칼럼투고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씨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하던 해인 1962 년에 태어나 노태우 정권이 3 당 합당을 했던 1990 년에 한국을 떠났으니 민주화된 조국에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셈입니다.

1. 절박한 사람들의 신앙, 종교권력 그리고 다원주의(문화적 자구기능)

‘절박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장로님의 견해에는 동의합니다. 일반화의 오류로 지적될만한 표현의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지하는 현상은 종교의 본질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어차피 종교란 인간 스스로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의지하는 대상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대해 무슨 할말이 있고 반론이 있겠습니까? 그게 그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식인데 무슨 도전이 잇겠습니까? 또 도전이 있다 한들 무슨 흔들림이 있겠습니까? Rhetoric이 아니라 제 진심입니다.

제가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는 개인이 하나님과 만나는 실존적인 신앙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하나의 집단적인 반동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는 ‘종교권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극히 실존적인 주제인 종교가 일종의 문화권력이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가공할 현상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문제제기라는 것 입니다.

저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없는데 장로님께서 먼저 해 주셨으니 저도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답글의 후반부에서 하신 장로님의 말씀은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에서는 장로님의 다원주의에 대한 이런 입장조차 용서할 수 없는 이단사상으로 단죄하려 들 사람이 많다는 걸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심지어 기장 내부에서조차 말입니다. 사실 이 주제는 ‘읽기’에 한계가 있는 전자매체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이 주제에 대해서 아직 ‘정돈된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정리한 제 입장은 이렇습니다. 저는 종교다원주의가 완결된 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론은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 개인의 신앙문제를 아직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특히 정통교리에 입각한 유일신 종교에서는 논리적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류전체가 ‘절박한 상황’에서 해방되는 동시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문학 분야의 석학 반열에 오르지 않는 한 변선환, 김경재, 오강남 교수의 논리를 개별 신앙의 이론적 토대로 삼으라는 건 무리하기 짝이 없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대세를 이루며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제가 살고 있는 북미에서는 이미 모든 분야의 Norm으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 종교는 ‘최상층 이데올로기’답게 가장 뒤늦게 허겁지겁 뒤따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종교다원주의를 신학적 입장에서 보다는 사회학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이해가 빠르다고 봅니다. 이미 두 세기 전부터 세계의 모든 인종- 종교- 문화권이 대규모로 만나고 섞여서 살아가기 시작한 이상 상호이해와 수용은 공존을 위해 불가피한 노력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류 공동체가 전쟁과 대규모학살(Genocide)로 인한, 헌팅턴이라는 작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Crash of civilizations’’로 인한 공멸을 피하기 위해 문화적 자구기능을 발동하고 있는 현상으로 이해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조건이 혁명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종교적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런 ‘큰 변화’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바빌론 포로 생활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전까지의 민족신관을 버리고 ‘보편적인 신관’을 갖게 된 것도 한 작은 예 입니다. 서구 중세 기독교 역사를 뒤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사건이 있다면 첫째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이고 둘째는 어제까지 평평하던 지구가 갑자기 둥글게 변해 태양 주위를 돌기 시작한 일일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문을 닫은 일도 없고 다른 종교가 창시되지도 않았습니다. 신 구교가 갈리는 사태를 당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같은 기독교(Christianity)의 지붕아래 건재합니다.

당시의 혁명적 변화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지금의 변화는 문화적 현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유일신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에게 불행이 있다면 그런 오늘의 시대를 그들이 현상유지(Maintenance)에 집착한 채 변화노력 없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길한 피비린내가 짙게 풍겨오고 있습니다. 다원주의 학자들이란 이런 사회적 현상을 연구하고 진단하는 사람들이지 이런 현상(다원주의 물결))이 오도록 선동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을 교단에서 �아내고 이단으로 단죄한다고 대세가 막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제 소견입니다.

2. 성서에 대한 의심과 질문

제가 기독교 신자라고 스스로 말한 이상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만 한다고 하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나이가 젊어 철이 덜 들었는지 아니면 머리구조가 잘못됐는지 이게 잘 되지 않습니다. 뭐든지 의심하고 꼬투리를 잡으면 파헤쳐 놔야 직성이 풀립니다. 장로님께서 “정경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의심과 질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절대자와 만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사실 저는 성서를 역사기록이 아닌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서에 나타난 사실관계의 오류여부는 제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성서의 기록과 정경으로의 채택과정에 어떤 세력의 음모와 조작이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게 제 의심의 핵심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마태오복음 기자가 희랍어로 된 이사야서를 誤讀해 예수를 나자렛 사람으로 만드는 바람에 빚어진 혼선이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예수가 나자렛 사람이면서 다윗왕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야 하는 두 가지 필요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어떤 세력(또는 사람)의 생각에 의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1) 퀴리노는 실제 부임년도 보다 적어도 6 년 일찍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해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의 명령을 수행, 호구조사를 해야 했습니다.
2) 그는 세원파악을 위한 이 호구조사를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이 본적지로 돌아가 호구조사를 받으라는 하등에 쓸데없는 행정명령을 발해야 했습니다.
3) 그 바람에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만삭의 몸을 이끌고 무려 1 백 60 km나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4) 예수가 태어나기 4 년 전쯤 죽은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했습니다.
5) 그 바람에 옛날 선지자인 예레미야는 하늘에서 라마에서 들려오는 통곡을 노래한 자신의 시가 마태오복음 기자에 의해 엉뚱하게 인용되는 것을 내려다 보면서 펄펄 뛰어야 했습니다.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이 에수의 탄생에 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제가 탓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오류가 기자 개개인의 신앙고백의 차이 이외에 다른 배경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진상을 알고 싶은 건 인지상정입니다.

정경 채택과정에 로마권력의 정치적 이해가 개입했다는 건 상식에 속하는 사항입니다. 이는 로마제국의 통치구조와 가부장적 교회권력 확립에 방해가 되는 문서들이 배제되고 그렇지 않은 문서들은 채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와 가장 가까웠던 마리아의 복음서’ 같은 Gnostic 문서들이 배제되고 예수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도바울의 편지들이 대거 채택된 것만 봐도 의문을 가져볼 여지가 많습니다. 요한계시록과 같이 뒤늦게 부랴부랴 정경으로 채택된 문서들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영지주의 시비에 휩싸여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렵고 피곤한 복마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권력과 정경확립의 역사의 관계는 현대를 사는 기독교 신자로서 의심하고 질문해 볼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문서조작을 의심할 수 있는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사도바울은 지식인답게 그 사고체계가 논리적이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평등관은 그 시대로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사고였고, 특히 이방인과의 식사자리에서 편견을 노출한 베드로에게 심한 말로 면박을 줄 만큼 그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이방선교를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했던 사람다운 철학입니다(예수는 이방선교를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왜 사도바울은 이방선교에 그토록 매달렸는가 하는 문제도 제 질문의 대상이지만 이 글에서는 접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디모테오전서(2: 9-15)에 나타나 있는 그의 여성비하발언이 증오범죄(Hate crime)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야 할 만큼 Ephesus 교회 안에서 극단적 Feminist들의 준동(?)이 심각했던 것이 아니라면 사도바울의 이 편지는 누군가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하는 점 역시 의심할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의심들이 신앙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신앙의 내용을 점점 성숙하고 풍부하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의 신성과 정경의 채택이 정치꾼들의 소굴인 공의회에서 투표(Vote)로 결정된 것이라면 교회와 학계의 새로운 연구에 의해 그것이 뒤집어 진들 무슨 아쉬움이 남겠느냐는 것이 제 조심스러운 생각이기도 합니다.

3. 기독교 근본주의가 미국 가치관의 버팀목?

이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의 일부는 ‘강동선 목사님께 드리는 글’에서 밝힌 바 있지만 아무래도 이 주제에 대해서는 복합문화공동체(Multi-cultural society)인 북미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Key Value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자세하게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서없이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주말에 미팅이 많아 이만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3 번을 제외한 앞의 두 주제들에 대해서는 이 분야를 공부하신 목사님들이 잘 상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그 분들이 학부 또는 대학원 과정에서 거의 다루셨던 Topics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드린 말씀들은 1차 자료를 가지고 연구한 전공자의 말이 아닌 아직 한 초신자의 개인적 질문에 불과합니다. 아카데미즘이 아닌 저널리즘에 입각한 문제제기 정도로 봐 주셔도 좋습니다.

사실 저는 말하는 것 보다는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장로님의 답변이 반가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의심과 질문의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 말을 자제하고 듣는것을 주로 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