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싫어하는 한국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근대 교육학이 등장하기 전에 생겨났을 이 속담은 사람을 태생적 성격과 유전자적 기질만 보고, 섣불리 그의 미래마저 단정 지워 버리는 무모함과 잔인성을 내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금 세기 들어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자리를 차고 앉은 몇몇 인물들을 보면 이 속담이 딱 들어 맞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제 스스로 가치 혼란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차지하면 안 될 인물들이 세류(世流)를 타고 교황이 되고,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되면서 전 세계에 진동하기 시작한 피비린내가 인류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 때문일 것입니다.
줄기차게 계속되는 요세프 라칭어의 망언 시리즈는 그의 개인적인 신념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2 년 전 교황으로 선출된 후, 그는 마치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가톨릭 교회가 견지하고 있던 일련의 진보적 입장과 개념들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고 ‘Dark Age’로 시계바늘을 되돌리는 것이 그의 사명인 양 행동하고 발언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전 세계를 종교-인종-이념 상의 파국적인 갈등구조로 몰고 가려는 세계적인 극우연대 (Far Right solidarity) 의 조직적인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종교-인종간의 화해라든가 복합문화 (Multi-culturalism), 평화를 위한 시민운동 등은 그들에겐 좌익이 장악하고 있는 문화권력입니다. 68 세대나 한국의 386 같은 ‘무례한 종자들’이 만들어 놓은 날벼락 맞을 퇴폐풍조입니다.
라칭어의 인생역정은 박정희만큼이나 변화무쌍합니다. 알려진 대로 그는1941 년 히틀러유겐트에 의무 가입한 뒤, 1943 년 방공포대(Anti-aircraft Unit)에 징집되어 BMW 공장을 지키다 독일이 패망한 1945년 미군의 포로가 된 경력이 있습니다. 청년 사제 시절에는 Hans Kung 이나 Karl Rahner 같은 진보적인 신학자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자신이 현재 그토록 저주하는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진보파의 일원으로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미 가치관 형성기에 들어선 10 대 후반에 겪었던 경험에 대해 그가 별로 갈등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황 선출 후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쏟아진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그의 반응이란 겨우 “유겐트에 가입은 했어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거나 “아버지가 反 나치주의자였다” 는 정도였습니다. 그가 제대로 된 떡잎이었다면 교황은 고사하고 사제로 일 할 당시, 비록 의무복무라 하더라도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권력의 소년단과 군대에 복무한 사실에 대해 그보다는 고통스러운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의 조국에서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 나치운동을 비롯한 극우의 준동에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거꾸로 유럽에서 거대한 규모의 영주집단으로 정착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종교갈등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2 년 전 콘클라베 직전 했다는 그의 발언에서는 파시즘의 편린마저 노출하고 있습니다.
"We are moving toward a dictatorship of relativism which does not recognize anything as definitive and has as its highest value one's own ego and one's own desires."
한마디로 상대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경계하는 말인데, 라칭어 자신만이 확실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의 편협한 자아와 욕망에서 비롯된 하찮은 것이라는 암시가 물씬 풍기는 말입니다.
그가 한 지난 10 일 문서승인은 개신교 나 그리스 정교에 대한 공격이 아닙니다. 새삼스럽게 ‘가톨릭이야 말로 예수님이 세우라고 한 진짜 교회이지 나머진 다 가짜야. 그 중에서도 개신교는 조금 더 가짜고’ 하는 따위의 유치한 주장을 하자는 게 그의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의 반복되는 망언과 행동을 치매증세가 있는 한 보수주의자의 주기적인 발작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독실하고도 fundamental 한 일개 가톨릭 신자로서가 아니라 고도로 전문화된 이념가로서, 또 거대 조직의 수장으로서 계산된 정치적인 행위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말로 무너뜨리고 싶은 것은 Ecumenism 입니다. 나아가 자신들의 종교권력을 뿌리에서부터 위협하고 있는 Liberalism 과 평화주의야 말로 요세프 라칭어가 공격하고자 하는 진짜 목표입니다. 그런 면에서 라칭어는 개신교 내부의 일부 근본주의자들과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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