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질들이 살아 돌아옵니다. 모두의 가슴에 남긴 상처가 너무 깊지만 진심으로 무사귀환을 환영합니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적지 않은 수모를 당한 한국 개신교는 어떤 형태로든 진통과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개신교가 변화를 겪든 말든 그것이 일반 국민들과 무슨 상관이냐는 볼멘 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인질 사건으로 소진된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를 누구에게 보상 받을 수도, 보상을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를 떠나 한국사회 전체가 함께 분담한 뒤 깨끗이 잊어 주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반성을 통해 교회답게 성장하고, 돌아 온 이들이 모두 심한 후유증 없이 건강을 회복한다면 보상은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너그러워 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할 말은 많지만, 논공(論功)부터 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우선 어려운 여건 중에서 인질구출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을 한 정부당국에 찬사를 보냅니다. 정부가 위험에 빠진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내가 태어난 조국의 정부가 이렇게 대견해 보이기는 난생 처음인 것 같습니다. 덜 떨어진 산쵸 마냥 침략전쟁에 파병한 오류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압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 성과로 그 오류를 상쇄할 수도 없습니다.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인질사건과 관련해서만은 칭찬을 해 주고 싶습니다. 정부협상단, 국가정보원, 외교통상부 그리고 청와대 관계 참모진이 혼연일체가 되어 주도 면밀하게 추진한 협상공작이 아니었다면 인질들이 이렇게 무사하기란 난망 했을 것입니다. 비록 협상 초반, 미국과 아프칸 괴뢰정권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하고 시간 낭비를 하는 바람에 인질 두 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했지만, 이것은 즉시 우리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준 계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인질협상을 한국측의 거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추진하고도 비교적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인질들을 구출하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쩐의 전쟁’ 에 나오는 ‘마동포’ 같은 작자들에게 빚을 지지 않았습니다. 전화위복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미국이 아프칸 괴뢰정부를 앞세워 한국정부의 애원에 가까운 간곡한 요청을 야멸차게 무시하고 따돌린 행위는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두고 두고 갚아야 할 악성 부채로 남게 됐습니다.
미국은 오히려 인질들의 틀림없는 죽음을 몰고 올 가즈니 주 탈레반 거점에 대한 NATO 군의 대대적인 지상군 공격을 감행하려고 시도하다가 한국 정부의 거센 반발로 계획을 취소한 적도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협상단과 탈레반 대표들간에 인질 석방을 위한 직접 협상이 가시화되자 전선 여러 곳에서 탈레반 게릴라 부대에 대한 파상공세를 강화해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위험한 짓거리 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기왕 미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국 정부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석방 협상 초기 이야기입니다. 아프칸 괴뢰정부가 끼어들어서는 될 일도 안 된다는 정보판단을 한국 정부가 과연 하지 못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괴뢰정부가 나서면 탈레반이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 없는 카르자이에게 흠집을 입히기 위해서라도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은 아마추어 정보분석가라도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저 같은 사람도 예상했는데, 밥 먹고 그 일만 하시는 국정원의 정보분석가들이 그걸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괴뢰이기는 하되 공식 정부인 카르자이 정부를 절차상 초장부터 배제할 수는 없었는데, 탈레반이 한국정부가 절차와 관련된 예의를 차릴 시간 조차 주지 않고 인질들을 살해했다는 변명을 할 생각일랑 아예 그만 두시는 게 좋습니다. 탈레반은 이미 사건 발생 초기에 한국정부와 직접협상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한국 정부에 카르자이 정권을 공식적인 협상창구에 등장시키지 말 것을 간접적으로 경고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카르자이 정부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한국을 중개자로 하여 부시정권과 담판하겠다는 의사였습니다. 그들로서는 ‘국가주권’과 관련된 당연한 요구입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이 경고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해석은 제대로 했는데 인질들이 살해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강요 때문에 ‘공식절차’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가 내 질문의 요지입니다. 지난 일이라고는 해도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언젠가 해명해야 할 문제입니다. 도대체 어떤 나라 어떤 작자들의 농간과 방해가 두 사람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게 했는가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인질들을 살린 최대의 공로자는 팔을 안으로만 굽히지 않고 냉혹할 만큼 차분한 이성으로 사태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 준 대다수 한국 국민 과 네티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 주류의 공격적인 해외전도행위를 비난하는 압도적인 국내여론을 세계는 경이로운 눈으로 보며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세계 각국의 무슬림들이 마음을 움직였고, 이들의 유형 무형의 압력이 탈레반으로 하여금 인질 처리 지침을 ‘적성국 이교도들에 대한 보복 응징’ 차원에서 ‘실리획득과 정치적 프로파겐다’ 차원으로 돌려놓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탈레반 지배지역을 통과하는 천연가스와 원유 파이프라인의 안정적 확보가 절실했던 미국과 라마단 전에 인질 문제를 매듭 짓고 싶어했던 탈레반 사이에 오간 교감이 간접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시 결정적인 공로는 세계 각국의 무슬림들이 탈레반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명분을 제공한 한국 국내의 ‘자기 비판 여론’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여론의 형성과정에서 상식인 들의 눈 쌀을 찌푸리게 하는 저질스러운 표현이 많이 등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영을 받은 무리’ 라든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반미 좌파’ 와 같은 악담과 저주.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의 핵을 이루며 그 중심을 잃지 않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불행 중 다행인 결과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귀환자들이 하루 빨리 돌아와 건강을 되찾고 정신적인 충격에서도 벗어나 정상 생활에 복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능력이 모자라 끝내 돌아오지 못하신 두 분의 유가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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