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카니스탄, 그 개망신을 바라보며

네티즌을 비판하신 어느 목사님에게

sarnia 2007. 8. 6. 09:05

이 글은 원래 OOO 목사님께 드리는 답글로 작성해서 꼬리글로 달았던 것인데 다른 분 들이 고견을 주시니 이에 대한 감사인사로 다시 작성하여 올립니다. 제 글이 많은 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데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박은조 목사 개인에 대해서 아는바 없습니다. 비교적 진보적인 기독교 매체인 뉴스엔조이의 발행인이라는 점, 말씀하신 수많은 안티기독교들이 등기부 등본까지 뒤져가며 재산관계를 추적해서 올린 글들을 제가 읽고, 별 특이사항은 없구나 하는 느낌이 든 적이 있다는 것뿐 입니다. 한 극우논객이 좌파목사 운운하며 조롱도 했다가 비호도 했다가 횡성수설 하는 기사를 보고 솔직히 제 개인적으로 사건의 매개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는 불쾌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은조 목사의 부적절한 발언을 지적하는데 있어서 그 분의 알려진 이념적 성향이 무엇이냐는 주된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이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위치에서 다시 부적절한 발언으로 많은 이들을 자극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인터넷 여론문제에 대해서 저는 몇몇 분들과 견해가 다릅니다. 인터넷 여론은 Offline 이 할 수 없는 여과 없는 토론과 자정기능이 있습니다. 때로는 악담과 저주가 난무하고 허위사실이 유포되기도 하지만, 그런 게 여론 형성의 중심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이 게시판에만 봐도 제게  입을 다물라고 상소리를 하신 분도 계시고 여기는 토론장이 아니니 선동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분도 계시지만 이런 의견들도 존중 받아야 할 소중한 한 표들입니다. 차별 없이 쌍방 교류가 무제한 가능한 인터넷은 Offline 과 제도언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온 여론의 독점과 기득권을 일거에 무너뜨렸습니다. 이 새로운 미디어 혁명이 없었던들 황우석 사기사건은 제대로 폭로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여론의 자정기능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건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더라도 결국 무엇이 진지하고 무게 있는 의견인지 무엇이 오합지졸들의 아우성인지 분별해 내고야 맙니다. 제도언론과 전문가집단, 그리고 표적이 되고 있는 사건 당사자들은 대중참여 미디어는 그런 자정기능을 할 수 없다고 믿고 싶을 뿐 입니다. 그래야 자기들의 권위와 기득권이 유지되고, 표적이 되고 있는 당사자들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박은조 목사의 발언이 이런 사고의 기조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자극한 것입니다.

 

네티즌에게 충고하기 위해 썼다는 차인표 씨의 글을 읽어보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이 분의 글도 이런 사고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분의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인도주의와 생명존중은 Context 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그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의 파장이 제한적이 아니고 사회적 연쇄성을 가질 때 특히 그렇습니다. 이번 인질사건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입니다. 협상 진행 결과에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수감자 교환도, 현금거래도, 군사작전도 이 사건과 직접 관계도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안전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체면마저 버리고 여기 저기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한국정부를 포함해, 아프칸 친미정부도, 탈레반도, 미국도, 아프칸 국민들도, 그리고 회교권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들도 이 골이 빠개지는 사태에 휘말려 제각기 다른 입장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입니다. 차인표 씨의 글은 잠시 인질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위로하는 기치는 있을지언정, 이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무책임한 동정여론으로 다른 문제들을 덮어버릴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물론 진심에서 나온 충정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는 지명도가 있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의 과도한 표현을 비판하려는 의도의 글을 작성하는데 있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유치한 악플들을 골라 유치원생들에게 백설공주 이야기하는 식으로 반박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비판론자들이 올린 다양한 입장의 글들을 정독하고 여기에 대한 반론을 진지하게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공인으로서 이 사건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말입니다.

 

차인표 씨는 항상 성실하고 용기 있는 언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고, 저도 그를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993 년 인가 MBC 드라마 파일럿에서 비행기를 닦는 단역으로 출연한 그가 그 보 잘 것 없는 배역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보고, 저 엑스트라는 계속하면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차인표 씨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제가 주변사람들에게 제 선견지명(?)을 자랑했던 기억도 납니다.        

 

23 명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누군들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특히 그들의 부모가 흘리는 피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아름다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때와 장소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캄캄한 터널을 모두 지나고 났을 때, 저는 이 비극적인 사건이 한국 개신교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을 믿습니다. 저는 보 잘 것 없는 새 신자이지만, 그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에 그토록 관심을 가져준 네티즌 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OOO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충고와 환기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