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찍었다는 그들의 단체사진을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왠진 모르겠지만, 사진 속 면면들을 보니 결국 살아는 돌아오겠구나 하는 찰나적인 예감에 이어 이것이 혹시 그들의 단체 영정 사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느낌이 겹치기도 했다. 토요일 개인적인 일로 캘거리-에드먼턴을 왕복하는 내내 이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일단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정부의 협상자세에 탈레반이 전향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은 의외이지만 고무적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처음부터 불길한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피랍자들의 여행목적과 그들을 파견한 종교집단의 성격이었다. 탈레반 지도부는 실리형이 아닌 이념형 인물둘로 구성된 조직이다. 그런 탈레반 지도부가 피랍자들의 여행 목적을 파악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이 의문이자 불안으로 다가왔다. 탈레반은 지금 한 맺힌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기독교는 그들에게 침략자들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선교는 적대적 선전포고라는 그들의 증오서린 외침은 엄포도 아니고 과장된 말도 아니다. 침략자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뒤집어 엎은 뒤 그들 보다 조금도 나을 바 없는 전쟁범죄자들과 마약상들을 긁어보아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한마디로 이 지구상에서 아프칸 만큼 외세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는 나라도 찾기 힘들 것이다. 탈레반의 무장조직이 국제법의 인정을 받는 합법적인 교전단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친미정권과 외국군대가 전쟁주체이듯이 그들도 나름대로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회복한 채 싸우고 있는 전쟁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침략자들에 의해 자존심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한을 품은 채 싸우고 있는 자기들을 향해 침략자들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여성이 아니었다면 현장에서 모두 사살했을 것이라는 탈레반 대변인의 말은 단지 자신들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생색이 아닐 것이다. 그의 말이 내게는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절규로 들린다.
인천공항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아프칸으로 떠난 그들이 이런 상황을 모두 숙지하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들에게 초청장을 발급한 한민족 복지재단이라는 단체가 수 시간 전에 내놓은 성명서를 보면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아프칸 전쟁이 친미정부가 수립된 시점인 2002 년에 종전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현지 봉사책임단체로서의 한심한 상황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어쨌건 지금 칼자루는 탈레반 지도부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23 명의 생사를 가름할 운명의 결정권은 아프칸 친미정부와 미국에 있다. 탈레반이 협상조건으로 내놓은 탈레반 수감자들의 석방 결정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피랍자들이 전쟁터로 관광여행을 갔건, 소풍을 갔건, 봉사활동을 갔건, 아니면 십자군이 된 기분으로 선교를 하러 갔건, 지금은 피랍자들의 잘잘못을 구구절절이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니다. 협상을 진행하는 정부나 안타깝고, 터질 듯이 답답한 심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나 이런 심정으로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했으면 한다.
‘또 말썽부려도 좋으니 살아서만 돌아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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