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그 전혀 다른 나라

뉴욕, 그 전혀 다른 나라(1)

sarnia 2005. 12. 6. 07:15

뉴욕, 전혀 다른 나라

 

보스턴을 출발한 차이나 버스가 허드슨 강을 건너 맨하튼에 접어들었을 , 내가 도시의 여행일정을 너무 짧게 잡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치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곳을 다시 찾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년도 됐을 같은 고풍스런 건물들, 형형색색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러 나라 글로 간판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거리. 일요일 오후 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가득 메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자동차들, 낙서와 요상한 벽화로 도배를 하다시피 건물벽, 길거리에 널려 있는 쓰레기, 마디로 맨하튼이 내게 인상은 요란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눈에 익은 풍경들이었다. 미국 캐나다의 여러 대도시들을 두루 다녀 봤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 이었다.

 

보행자들이 신호를 무시한 멋대로 길을 건너 다니는 바람에 가뜩이나 교통체증에 묶여 도착이 지연되고 있던 버스는 예정시간에서 30 분을 넘기고서야 종착지점으로 여겨 지는 길거리 정류장에 들어섰다. 그것도 스피커 볼륨을 크게 올려 놓은 정류장을 점령하고 있던 아큐라 스포츠카를 경적을 울려 몰아 내고서야 간신히 정류장에 들어 있었다. 아까부터 혼자 뭐라고 영어로 욕설을 중얼대고 있던 30대의 중국인 운전사는 버스가 도착 하자마자 버튼을 눌러 차문을 열더니 승객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휑하니 나가 버린다.

  

드디어 맨하튼 차이나타운에 도착했다. 간데 없는 한문 간판들이 뒤덮고 있는 길거리는 온갖 종류의 상인들과 몰려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거리 풍경을 찍고 있는데, 볼일 없이 배회하는 시늉을 하던 흑인이 다가 오더니 귓속말로 롤렉스 시계가 있는데 2 백불 사지 않겠느냐고 수작을 걸어온다. 들은 척도 안하고 찍은 사진들을 LCD 모니터로 확인한 , 곧장 인터넷을 통해 미리 주소와 약도를 알아 J & J 라는 선물가게를 찾아가서 메트로카드 1일권을 7 불을 주고 구입했다.

 

 

당초 계획은 GREYLINE LOOP TOUR (‘슬픈 연가 김희선 순창고추장 차승원이 타고 다녔던 빨간색 2 버스) 48 시간짜리 티켓을 끊어 맨하튼의 주요 포인트들을 섭렵하면서, 벼르고 별렀던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을 관람하고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보는 것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3시간짜리 크루즈 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 지하철과 시내버스 이용방법을 공부 , 우선 곳에서는 같이 혼자 다니는 자유여행자가 관광버스를 타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교통체증의 정도에 따라 버스와 지하철, 걷기를 적절하게 선택하여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것이다.

 

그리고 맨하튼 도착하고 뒤에야 박물관 뮤지컬 공연 관람 그리고 맨하튼 일주 크루즈 가지 모두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지를 하는데 필요한 10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갑자기 정도로 도시의 요란한 인상과 익숙한 곳에 되돌아 온듯한 이상한 느낌이 나를 사로 잡은 것이다.

 

아무튼 나는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뉴욕여행 계획을 짜서는 된다는 사실을 뉴욕에 도착해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마디로 뉴욕은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이 아니었고 별개의 문화와 캐릭터를 가진 전혀 다른 나라처럼 보였다. 나는 에드먼턴 에서 거의 한달 가까이에 걸친 정보분석(?) 끝에 정교하게 일정을 미련 없이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짰던 계획은 도시에서는 9 10 일정 에나 어울릴만한 것이었다.

 

 

오후 1 30. 우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나트랑 이라는 이름의 월남국수집 찾아 갔다. 수잔 서랜든 자주 찾는 유명한 집이라고 하는데 입맛에는 캘거리 연방정부 청사 맞은 편에 있는 단골식당 국수 맛이 나은 같았다. 식당을 나와 CANAL STREET 따라 걷다 보니 도깨비시장 같은 곳이 나왔다. 짝퉁 시장이었다. 진짜 유명 브랜드의 재고인지 장물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상상도 없는 가격에 물건들이 팔리고 있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향수 전문점들이 도로 양쪽에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중동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보스나 폴로 같은 오래된 브랜드들을 백화점의 3 분의 1 정도 가격에 팔고 있었다. 120mm짜리 폴로 폴로 불루를 각각 20 불씩에 후려쳐서 하나씩 구입했다.

 

 

그자리 에서 포장을 뜯어 향을 확인했다. 다른 몰라도 고급향수의 향을 똑같이 가짜로 만들어내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선 숙소에 가서 체크 하고 가방을 떨궈놓기 위해 PENN STATION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 탔다. 한때 악명 높던 뉴욕의 지하철은 생각했던 보다 안전하고 깨끗했다. 흠이 있다면 차량이 낡고 협소하다는 점이었다. 지하철 구내의 통풍시설 역시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은지 덥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시내곳곳에 정복경찰들이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째려보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사복차림의 짭새(?)들이 깔려 있는 것도 우리 세대 특유의 감각으로 알아낼 있었지만 검문을 하는 것은 뉴욕에 있는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이틀간 묵을 숙소는 30 번가 8th Avenue 코너에 있었다. ‘맨하튼 이라는 한글간판이 보였다. 방은 4 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걸어 올라가야 했다. 넓이의 초록색 카펫이 깔린 방에는 2 침대 개가 놓여 있었다. 유스호스텔에 묵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보스턴의 개짜리 호텔에서 지내다가 곳에 묵자니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생각을 고쳐 먹었다. 어차피 잠만 것을. 그래도 가격이면 라스베가스 에서는 특급호텔에도 묵을 있는데, 젠장. 그나마 청결한 방과 제대로 구색을 갖춘 욕실이 딸려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밖에 없었다. 가방은 방에 두고 비행기표 당장 필요 없는 현찰, 그리고 개를 제외한 나머지 크레딧카드 들은 프런트 데스크의 안전금고에 보관했다. 가급적 여행자 티가 나지 않는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검은 () 재킷, 바지, 언제든지 쓰레기통에 들어갈 준비가 돼있는 낡아빠진 필라 운동화, 지하철-버스 노선도와 물병 등을 챙겨 넣은 플라스틱 쇼핑백 등이 그것이었다. 김종환과 심수봉 그리고 추억의 30년인가 뭔가 하는 1970년대 노래들이 잔뜩 저장돼 있는 MP3 플레이어 이어폰을 귀에 꽂은 앞창을 잔뜩 구부린 검은 나이키 야구모자를 눌러 썼다.

 

 

 8th Avenue 에서 타운 쪽으로 올라가는 20 버스에 올라탔다. 5분도 42 번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동쪽으로 블록 남짓 걸어가자 유명한 브로드웨이가 나왔다. 아직 대낮인데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일대를 덮고 있었다. 이미 차이나타운에서 익히 보았던 엄청난 인파, 세계를 곳에 모아 놓은 듯한 인종전시장,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북미의 다른 도시들에서는 물론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서울에서도 느껴 없었던 독특한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눈에 익은 전광판들이 나타났다. 코카콜라 위에 삼성, 삼성 위에 홍콩 상하이 뱅크 전광판을 층층이 붙여놓은 낡은 건물이 있는 . 타임스퀘어가 바로 여기였다. 너덧 블록 떨어진 곳에 갈은 모습의 전광판 건물이 마주 보고 있었다 타임스퀘어에서 내가 먼저 일은 아마 영화 부스 나오는 . 부스 저격범이 숨어있던 건물을 찾으려고 한참을 두리번거린 일일 이다       

 

  

TKTS 라는 붉은색 간판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 저녁 뮤지컬 할인티켓을 구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몇몇 뮤지컬의 할인쿠폰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구해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47 번가 48 번가 사이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 보았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동그란 부스 안에는 40 대로 보이는 잿빛 머리의 여자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라이온 이나 맘마미아 할인쿠폰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라이온 당연히 없고 맘마미아 내일(월요일) 공연이 없어 시간이 맞지 않았다. 결국 오페라의 유령할인쿠폰을 받아 들고 공연장소인 MAJESTIC 극장을 찾아 나섰다. 44 번가에 위치한 극장은 걸어서 5 거리에 있었다. 내일 저녁 8 공연 100불짜리 오케스트라 앞자리를 57 50 센트에 구입했다. 좌석번호 H1 블록 중간복도 바로 , 횡재에 가까운 명당자리였다.

 

 

늦게 다시 거리 쏘다니기를 작정을 하고 일단 타임스퀘어를 뒤로 50 번가를 따라 계속 동쪽으로 이동했다. 거대한 빌딩 중간의 광장에서는 콘서트 열리고 있는지 모여든 구경꾼들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가락이 흘러나와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노래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는데, 온통 검은 색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는 가수를 발견하고서야 에디뜨 삐에프의 노래라는 것이 생각났다. 한쪽에서는 거리화가가 행인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고 있었다.

 

 

나도 그려 달랠까 하고 다가가서 보는데 모델로 앉아있는 손님 얼굴과 거의 완성돼 가는 얼굴그림이 별로 닮은 같지 않아 그만 두었다. 다른 화가는 옆에 크게 확대한 구스타프 클림트 복사본들을 마치 자기 그림인양 팔고 있는 같았다. 네가 그린 것이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망설임도 없이 하고 짧게 대답한다고개를 크게 끄덕여 주고 발길을 돌리는데 10 후반으로 보이는 동양계 여자 아이 둘이 다가오더니 스케이트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것을 부탁했다. 서툰 영어와 엑센트로 보아 유학이나 배낭여행을 하는 한국아이들이 틀림없었으나 사진을 찍어준 아무 내색 않고 카메라를 돌려 주었다. 한국사람임을 밝혀 인사 차리고 어쩌고 하면서 서로 조금이라도 귀찮아 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 2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