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 센터와 성 패트릭 성당 사이에 있는 대로(大路)로 나왔다. 5 번가였다. 여기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유명한 5th avenue 명품쇼핑 가가 나온다. 오드리 햅번이 열심히 그 앞을 지나다니던 보석상 ‘티파니’ 도 여기에 있다. 그 쪽으로 내려가 볼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파크애비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곧 해가 질 시간이었다. 파크애비뉴 와 그랜드 센트럴 역이 교차하는 지점의 남쪽과 북쪽은 미드타운 의 번잡한 거리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훌륭한 장소였다. 도로 중앙분리대에 서서 노란 택시들이 많이 몰려들 때를 기다려 대 여섯 컷을 찍었다. 42 번가 에서 42 번 버스를 타고 다시 서쪽으로 두 블록을 가서 공립도서관 앞에 내렸다. THE DAY AFTER TOMORROW 에서 피난처 구실을 했던 유서 깊은 건물이 바로 이곳이다.
이번에는5 번가를 따라 여덟 블록을 걸어서 내려갔다. 남북 블록은 동서 블록에 비해 훨씬 거리가 짧은 것이 맨하튼 도로의 특징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34 번가를 지나자 마자 한글간판이 눈에 띄기 시작 하더니 32 번가에 이르자 그 서쪽 길은 아예 몽땅 한국 식당과 상점들이다. 맨하튼 리틀코리아였다.. 토론토 불루어 가에 있는 한인타운과 비슷한 규모로 보였으나 사람들도 많고 훨씬 번화한 빌딩숲한복판에 위치해서 인지 꽤 그럴 듯 해 보였다. 대한항공 승무원둘 의 단골식당이라는 감미옥은 다른 블록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강서면옥 과 뉴욕곰탕 등 24 사간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았다. ‘금릉’ 이라는 한국식 중국식당에서 잡탕밥으로 저녁을 때운 뒤 ‘무엇을 할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하는 생각으로 한인타운에서 두 블록 떨어져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공항과 비슷한 구조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다음 전망대로 올라가는 표를 구입했다. 일요일 저녁이라 평소보다 한산한 편 이라는 게 보안요원의 설명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향해 지그재그로 늘어서 있는 줄이 자그마치 2백 미터는 될 것 같았다. 내부수리 증 인지 곳곳을 나무판자로 막아 놓았는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엘리베이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86 층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탐 행크스 와 맥 라이언이 이 곳에서 만났을 때는 마감시간이 지나서였기 때문에 뉴욕 야경을 곁들인 분위기가 그럴 듯 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올라갔을 때는 분위기는커녕 바깥쪽을 향해 직경 10센티짜리 카메라를 들이댈 공간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야경은 그래도 볼만 했다. 남쪽으로 자유의 여신상의 불빛이 보였고 사방이 거대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영화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멋진 첨탑을 가지고 있는 크라이슬러 빌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나와 다시 타임스퀘어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34 번가에서 34 번 버스를 타고 6TH Avenue 에 가서 업 타운 행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일요일의 늦은 저녁인데도 버스와 지하철은 승객들로 꽤 붐볐다. 밤의 타임스퀘어는 아까 낮 보다 훨씬 시끄럽고 화려했다. 낮에 왔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전자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그 중 한 군데에 들어가 진열된 제품들을 둘러 보았다. 4 기가바이트 아이파드를 139 불에, 5 메가픽슬 소니 카메라는 169 불에 팔고 있었다. 하자가 없는 정품들이라면 놀라우리만치 싼 가격이었다. 전자상가를 나와 아이스 크림 가게로 들어가 땅콩가루를 두른 모카 콘을 하나 주문 했다. 시계를 보니 밤 10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하루 종일 너무 많이 걸어 다닌 탓인지 다리도 아프고 피곤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앉아 있을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TOYS R’ US 출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대로 건너편에서는 종교단체에서 나온듯한 흑인 두 사람이 번갈아 소리를 질러대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있는 극장가의 네온사인을 향해 카메라의 초점을 잡고 있는데 느닷없이 57인승 프리보 버스가 나타나 시야를 가로 막더니 한 떼거리의 관광객들을 내려 놓았다. 이 시간에 뉴욕 야경 옵션 관광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버스가 골목 입구를 가로질러 정차하는 바람에 그 골목에서 브로드웨이로 진입하려던 차량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맨 앞에 있던 노란 택시에서 터번을 머리에 두른 시크교도 차림의 운전사가 밖으로 나오더니 버스에다 대고 삿대질을 해대며 분통을 터뜨렸다.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울려대는 경적소리 때문에 그 일대가 갑자기 시끄러워 졌는데도 버스는 아예 마이동풍이었다. 관광객들을 다 내려놓은 다음에도 1분 정도를 더 지체하고 나서야 천천히 길을 비켜 주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8th Avenue로 걸어 나왔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그냥 계속 걷기로 했다. 오래 앉아서 휴식을 취한데다 카페인이 들어간 모카 아이스크림을 먹어서인지 피곤함이 많이 가신 것 같았다. 결국 숙소인 맨하튼 인 까지 10 여 블록을 걸어서 내려갔다. 8th Avenue의 밤거리는 타임스퀘어 와 또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힙합 바지에 보자기를 머리에 동여매고 뒷주머니에 체인을 늘어뜨리고 있는 전형적인 양아치 차림의 10대 에서부터 섹스 � 부근에서 건들 거리고 있는 탱크 탑 과 'T' 팬티 차림의 여자들, 비 맞은 중처럼 혼자 쉬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는 약간 맛이 간 중년남자, 그리고 진짜 가족인지 아니면 가족처럼 팀을 짠 조직구걸단인지 모르지만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청승맞은 합창을 하고 있는 노숙자 가족에 이르기 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거리거리 마다 우글거리고 있었다. 보도 쪽 차선은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쳐들고 나온 사람들로 인해 거의 점령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고함고리, 사이렌소리, 경적소리 등으로 말할 수 없이 소란스러웠다. 그런데도 무질서하다거나 불안하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정겹고 오랜만에 사람 사는 곳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전 6시. 셀폰의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워와 아침식사를 대충 마치고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러시아워가 시작되기 전에 월 가(街)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34 번가 지하철역 안에 있는 자동판매기에 5불짜리 한 장과 1불짜리 두 장을 넣고 DAY PASS의 출력 버튼을 누르자 메트로카드가 튀어 나왔다.
월 가는 폭이 두 차선 정도 되는 좁은 길이었다. 한 쪽 끝에 길쭉한 모양의 트리니티 교회가 있었고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증권거래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형 성조기가 건물의 전면을 거의 가리다시피 한 증권거래소 앞에는 경찰과 보안요원들이 출입자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옛날 인사동 골목길 같은 보 잘 것 없는 이곳이 세계경제를 주름잡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증권거래소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육중한 철제 팬스로 둘러싸인 세계무역센터 자리 한 켠에는 그날의 상황을 분(分)대 별로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상황판이 자리잡고 있었다. 팬스 안쪽에 십자가 모양의 철골이 보였다. 9. 11 공격의 직접적인 동기는 네오콘 안에 포진하고 있는 극우 시온주의자들과 결합한 부시 정권의 노골적인 반 (反) 팔레스타인 정책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작년 11 월 대선 투표를 한 미국의 유권자들 중 절반이 재앙을 불러온 이 신 (新) 제국주의자들에게 다시 지지를 보냈다. 새삼스러운 분노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으며 길거리를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두 빌딩이 차례로 무너져 내릴 때 센터 남쪽에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피신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갑자기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들 다 가는 이 곳은 내 여행일정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오전에는 자연사박물관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되어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까다로운 보안검색과 벌떼처럼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다녀오는데 시간소비가 많은 곳이었다. 생각 끝에 맨하튼 과 스테이튼 아일랜드 사이를 왕복하는 훼리를 타고 가고 오면서 기념사진이나 먼 발치에서 찍고 오기로 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로 가는 훼리는 사우스 포트의 5 번 항구에서 15분 마다 출발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요금도 낼 필요가 없었다. 행정구역상 뉴저지 주에 속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의 상징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상징이다. 영화 ‘타이타닉’ 에서 잭의 친구 파브리치오가 뉴욕으로 향하는 타이타닉의 선수에서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타내 주듯 자유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이민자들의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우스 포트를 출발한지 10분만에 훼리는 자유의 여신상과 옛날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 섬을 옆으로 지나쳐갔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백 주년을 기념하는 선물이라며 이 얼토당토않게 커다란 여신상을 배에 실어 보냈을 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혹시 프랑스가 우리를 조롱하느라고 저런 것을 보낸 것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두 나라는 옛날부터 사사건건 궁합이 맞지 않았다. 오랜 기간 견원 지간이라 할만한 나라로부터 받은 선물이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돼 있다는 자체가 코미디에 가까운 아이러니였다. 어느새 훼리가 스테이튼 아일랜드 항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맨하튼을 출발한지 20분 만이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다른 볼일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배에서 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훼리의 구조상 이번에는 선미(船尾)가 선수(船首)가 되어 다시 맨하튼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플라스틱 쇼핑백을 챙겨 들고 배의 뒤 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선미에는 벌써 10여명의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배가 다시 맨하튼으로 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 3분쯤 지났을까, 트래픽 베스트를 두른 히스패닉 계통의 승무원 두 명이 부리나케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왜 안 내리느냐며 소리를 꽥 하고 질렀다. 내가 나서서 ‘우리는 맨하튼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내릴 필요가 없다’고 했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배는 가지 않으니 내려서 옆에 있는 배로 갈아 타라며 창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매번 너희 같이 약삭빠른 척 하는 인간들 때문에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다시 그 기나긴 배의 끝에서 끝으로 뛰어가자니 목덜미에서 땀이 솟을 지경이었다. 맨하튼을 향해 출발할 훼리에는 이미 승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배를 놓쳐 15분을 낭비하지 않게 된 것만 다행으로 여기며 서둘러 배에 올랐다. ( 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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