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 교역자 협의회의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칼럼을 한 장 날린 뒤 밴쿠버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가는 날 에드먼튼 아침 기온이 영하 26 도, 밴쿠버는 영하 1 도라는군요. 올해 들어 처음 맞는 캐나다다운 겨울 날씨입니다.
이틀 후 에드먼턴과 캘거리를 비롯한 서부 내륙지방에는 무서운 한파가 통과합니다. 이날 밤 에드먼턴 국제공항의 수은주는 영하 41 도, 체감온도 영하 57 도였다는군요.
창밖은 잿빛이다. 온 세상이 우울하고 쓸쓸해 보인다. 내가 타고 갈 비행기. 에드먼턴에서 밴쿠버는 약 1000 km 비행시간은 이륙 후 1 시간 20 분 이다.
나도 시를 한 수 써 볼까?
여기는 겨울이 길어요.
그래도 봄이 오긴 오죠
잠깐 다녀 가는 거죠.
강현 님 처럼......
시를 쓰려면 감성도 상상력도 풍부해야 하지만 모방도 멋들어지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모방을 멋들어지게 하려면 우선 표절을 기술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는 내가 어디선가 표절했다.
어디에서 표절했을까? 알아 맞추는 사람 선착순 열 명에게 언젠가 만나면 점심 쏜다. 단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답은 무효다.
여행할 때는 읽을 책을 두 권씩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습니다. 한 권은 한국말로 된 것 또 한 권은 영어로 된 것으로 짝을 맞춥니다. 저는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주로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습니다.
이번에 가져간 책 중의 하나는 도마복음에 관한 것 입니다. 도마란 식칼-도마 할 때 그 도마가 아니라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그 도마를 말합니다. 토마라고도 합니다.
아, 실패했다. 동그란 무지개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비행기에서는 무지개가 동그랗게 보인다. 사진에 안 잡힌 이유가 뭐지? 물론 내 잘못은 아니다. 첫째는 날씨가 안 좋아서 일테고, 둘째는 카메라가 후져서 일 것이다.
기원 후 4 세기 초, 로마제국을 통일한 황제권력은 제국과 식민지를 통치할 단일 지배이데올로기를 만드는데, 그 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선택한 것이 기독교였습니다. 로마의 황제권력이 유일성을 내포했기 때문에 그 체제를 뒷받침할 종교 이데올로기 역시 단일성과 유일성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황제권력의 요구에 의해 종교지도자회의가 열리고 여기저기 산만하게 떠돌던 예수에 관한 자료들 중 예수의 신성과 유일성 단일성을 뒷받침하는데 도움이 될 만 한 스물 일곱 가지 문헌을 선별하여 이른바 성서를 편집하게 됩니다.
이들은 문서들을 편집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의 편지 중 디모데와 다도서 등 여섯 가지 문서들을 날조하기 까지 했습니다. 저는 무식해서 잘 모르겠지만 이들이 보기에 영지주의자가 분명한 바울을 빼자니 그가 진짜 쓴 편지들, 이를테면 갈라디아서나 로마서 같이 버리기 아까운 명문들이 눈에 밟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친절한 캐나다는 한국말도 잘한다.
어쨌든 스물 일곱 가지 문헌이 성서로 선포된 이후 이 문헌에 기초해 확립된 종교적 교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머지 모든 문헌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소각 작전이 전개됐고, 딴 소리를 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됐습니다.
로마 권력에 의한 진짜 기독교 박해란 사실 밀라노 칙령 선포와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저질러 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입니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물려죽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날조된 것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로마는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관대한 체제였습니다. 오히려 순교하겠다고 달려드는 광신자들이 귀찮아 로마 관리가 도망 다닌 적도 있고, 죽여달라고 하는 순교희망자들을 향해 ‘나는 너를 죽일 이유가 없지만 자살하는 것은 자유’ 라고 얼렁뚱땅 피해버린 로마 황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밴쿠버 다운타운까지 연결되는 공항전철이다. Canada Line 이라고 하는 이 공항전철을 타고 일단 다운타운 까지 가서 Sky Train이나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객차는 귀엽고 깔끔하고 깨끗하다.
밴쿠버 시내를 운행하는 전철에는 운전사가 없다. 모두 무인 전동차다. 오늘은 내가 맨 앞자리에 앉아 기사 역할을 하고 갔다. 운전사가 없는 전동차가 고장으로 선로 위에 서는 경우가 이따금 있는데 그럴 땐 좀 황당하지.
도마복음이란 그 당시 로마권력과 그 권력에 협조하는 문자주의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수색과 살육을 피해 토기 속에 밀봉돼 숨겨져 오다가 약 60 여 년 전에 이집트의 한 농촌에서 발견된 문서 중 하나입니다.
이 문서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왜 이 문서들이 당시 권력의 추적을 피해 항아리 속에 들어가 숨어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만 해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귀가 닳도록 들어 온 부활이라든가 종말, 심판 따위의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내 안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무엇인가 초월적인 진리 또는 ‘나의 의미’를 깨닫는 것…… 뭐,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똥밟은 소리 같기도 하지만 '역사성'과 '믿음'을 강조하는 수상쩍은 설교보다는 훨씬 종교다운 깊이가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부활이야기를 하더라도 공관복음에 나오는 의미와는 전혀 다릅니다. 공관복음이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바람을 잡고 있는데 반해 도마복음에서는 ‘깨닫는 자로서의 새로운 삶’의 의미로 그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올해는 엘리뇨 해인데 춥다. 이 날 밴쿠버 낮 기온은 0 도. 제주도 보다 겨울이 따뜻한 밴쿠버 사람들은 추위에 약하다. 금요일 오후인데도 롭슨 스트릿이 텅 비어있다.
평소에 이 롭슨 거리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낱말은? 힌트, 한국말이다. 정답은......... "씨발"
과장이 아니고 평소 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20 대 청춘들 10 명 중 서넛은 한국 청춘들이다.
참, 외로운 기러기 엄마 영숙이와 별거 중인 교포 사내 철수의 슬프고도 긴장감 넘치는 로멘스를 주제로 한 영화가 만들어 진다면 그 배경도 롭슨 거리가 될 것이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가사의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행적에 관한 새 문서들이 무더기로 발견된 지 62 년 또는 64 년이나 지났는데도 기독교인들의 신앙 패러다임의 변화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느리고 그 내용의 변화규모도 미미하다는 것 입니다. 기독교인들 스스로의 용기부족과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사태 아닐까요?
밴쿠버에서는 한 지인과 이슬람에 대해 유익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아이라 라피두스의 A History of Islamic Society 에 대해서였습니다. 저는 우선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워낙 여러 차례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이라 그런지 정관사 ‘The’가 아닌 부정관사 ‘A’ 로 시작하는, 문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제목만 보고도 강개무량할 지경입니다.
사실 저는 말을 아꼈는데, 그 이유는 원서 기준으로 1000 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슬람을 전공하는 학생도 아닌 터에 이 비싼 책을 살 마음은 없지만 시간 날 때 마다 Chapter’s 에 붙어있는 스타벅스 소파에 앉아 독서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앞으로 3 개월 간 제가 할 프로젝트입니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 57 개국 14 억 인구를 망라하고 있는 세계 최대 종교 ‘이슬람의 다양성’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일 것 입니다.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편견에 의해 굴절된 시각을 반영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일 것 입니다.
밴쿠버는...... 겨울이 우중충하다. 11 월 부터 3 월 까지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밴쿠버는...... 산이 많다. 도시 전체가 산과 바다 그리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기장게시판에서 이슬람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은, 아니 그 저주를 퍼 나르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을까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이런 책을 읽어보기는커녕 구경조차 한 적이 없을 것 입니다. 한 마디로 “X도 모르면서 탱자탱자한다” 는 말이지요.
시간이 남아돌아가면 엉뚱한데다 악담을 퍼붓지 말고 공부를 한 자라도 더 하시구요. 뭘 정 쓰고 싶거든 나처럼 가끔 여행기나 쓰세요. 여행기 쓰다 말고 느닷없이 상소리를 해서 미안한 데 ‘생각에 간격’에 따라 그에 적절한 서로간의 표현 장르가 따로 있는 거니까 너무 개의치 마시구요.
그리고 밴쿠버는......중국계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인구의 3 분의 1 이다. 밴쿠버의 유명한 할렘가 헤이스팅스와 메인 거리가 근처에는 북미에서 두 번 째로 큰 차이나타운이 있다.
우중충한 헤이스팅스 가 와 펜더 가의 뒷골목. 후커들과 손님들, 마약쟁이들, 홈리스들의 고향같은 곳이다. 오늘은 길거리가 조용한 게 추워서 모두 근처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들어가 죽치고 있는 모양이다. 밴쿠버에서 섭씨 0 도란 무서운 한파다. 밴쿠버의 노숙자들은 유식하고 매너도 좋고 사상도 비교적 건전하다. 아마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일 것이다.
밴쿠버와 에드먼턴 사이에는 두 개의 커다란 산맥이 있다. 코스트 산맥과 록키 산맥이다. 회색은 구름이고 그 위에 솟아 오른 하얀 봉우리들이 코스트 산맥의 봉우리들이다.
에드먼턴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쌈빡하게 변해 있군요. 영하 38 도. 아까 말한대로 어젯밤 수은주는 영하 41 도에 바람체감온도 영하 57 도. 끝내주게 쿨한 날씨입니다. 수요일부터나 풀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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