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기관이 해외의 폭력배들을 고용하여 자국민을 살해했다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사실로 드러날 전망이다. 한 국정원 관계자의 제보에 의해 조사가 시작 되기도 전에 일각이 드러난 '김형욱씨 실종사건'이 주는 충격은 우리가 왜 진상규명과 깨끗한 정리 없이 과거사의 늪에서 한 발짝도 빠져 나올 수 없는 지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이 사건은 지금까지 알려진 10.26 대통령 피살 사건의 엉성하기 짝이 없는 '거사 동기'를 좀 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 되고 있다.
1979년 10월 초, 중앙정보부 해외담당부서 소속 8명의 공작요원들이 당시 영주권자로서 미국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파리로 유인한 뒤, 현지의 조폭들을 고용해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유학생으로 위장한 한 공작요원이 사체 처리를 확인한 뒤 '파리의 킬러들'에게 잔금을 지불했고 이후 25년간 이 사건은 베일에 가려진 채 온갖 소문만 무성해 왔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통해 공작요원들에게 하달된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부살인업자 고용과 거래 요령, 대금 결제 방법, 사체 처리 및 역할 분담 등이 치밀하게 논의 됐고, 보안 유지를 위해 해외담당 1차장에서부터 파리주재공사로 이어지는 중정 조직 내의 지휘계통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모든 작전은 김재규 부장이 직접 편성, 파견한 비밀공작조에 의해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의문은 박정희 정권의 핵심인물들 중 비교적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알려진 김재규가 이런 무모한 공작을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수행했겠느냐 하는 점이다. 박정희 씨를 몽매에도 잊지 못하고 열렬히 존경해 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이 살인공작은 당시 최고 통치권자였던 박정희씨의 직접 지시에 의해 수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도 '언질'이나 '묵인' '암묵적 시사' 따위가 아닌 구체적이고 강력한 명령의 형태로 강요되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김대중씨 납치 및 살해기도 사건의 경우 '암묵적 시사'로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으나, 김재규는 이후락과는 아주 다른 인물이었다. 차지철의 경호실은 이런 종류의 공작을 수행할 만 한 해외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청와대 조직을 이런 일에 동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여건들이 박정희씨로 하여금 국가원수로서 해서는 안 될 명령을 중앙정보부장에게 내리게 했을 것이고 경직된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은 공무원의 신분으로 이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집권여당이 사실상 패배한 '78년 12월 총선 이후부터 박정희씨의 성격이 급격히 더 난폭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듬 해인 79년에 들어와서 이성을 잃은 듯한 무리한 정치공작들을 강행했다 이 중 '5.30 신민당 전당대회에서의 이철승 당선공작'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 직무정치 가처분 신청'은 중앙정보부 조정관들과 분석관들이 '무리'또는 '불가'의견을 제출했으나 강행지시가 청와대로부터 내려왔다. 10.4 신민당 총재 의원직 제명 때는 김재규 부장과 일부 공화당 중진들까지 나서서 만류했으나 대통령 집무실의 재떨이가 벽으로 날아가 박살이 나고 나서 군소리 없이 강행됐다.
박정권 말기의 의사결정 과정은 매양 이런 식이었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몰락의 위험을 감지한 독재자의 광기가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40년을 같이 해 온 스승이자 선배이자 상관인 사람을 면전에서 가슴과 머리를 차례로 정조준하여 사살한 이유를 정치적이나 우발적 동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해서는 안 될 일을 강요한 상대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이나 공포심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행위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고, 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김형욱 살해공작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는 김재규를 이런 심리상태로 몰아넣었을 공산이 크다.
우리는 앞으로 국정원 스스로 수행할 이 사건의 진실 규명 과정과 결과를 주시할 것이다. 사건의 성격상 미국, 프랑스 등 관련국가와의 상호 협조와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의 이미지에 새삼스레 똥칠을 하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하루 빨리 악취가 진동하는 과거사의 오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함으로써 더이상 의혹과 갈등으로 국가공동체의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그리고 반인륜적인 독재정권이 횡포를 부리던 시대를 거두절미한 채 '위대한 시대'로 추억하는 일각의 위험한 풍토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도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히틀러는 1차대전 패전으로 피폐해진 독일의 경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경제 개발계획을 잘 수립했고 아우토반을 건설했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했던 12년간을 영웅시대로 추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물론 한 시대의 공과를 구분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특정한 목적을 가진 어떤 정치세력이 한 시대의 역사를 본말을 전도한 채 일방적으로 미화하여 선전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궁정동 비밀요정에서 벌어진 피비린내나는 살인극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강현 (sarnia@hanmail.net)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3/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5 CNDream.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