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이트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이자 제 안티 중의 한 분이 느닷없이 ‘남의 좋은 점 말하기’ 모범을 보인다며 ‘노무현 칭찬’을 하시길래 제가 답글로 달아 올린 추억담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화답하는 의미에서 박정희나 전두환 칭찬을 좀 해 볼까 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칭찬거리를 별로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그냥 노무현 추억담으로 대신했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 자꾸 나타나 미안하다’는 제 마지막 인사에 그 분이 “꼴도 보기 싫긴요? 사실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라는 댓글로 화답하셨습니다. 거의 극단적인 견해차이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정담이 훈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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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저를 보지 않을 것처럼 말씀은 하셨어도 자꾸 제가 했던 표현 같은 것을 인용하시는 걸 보고 댓글 안 달면 섭섭해 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회고담 시간을 갖는 것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저도 그냥 잔잔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빨갱이’가 아닐까 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우선 출신성분자체가 거리가 멀거든요. 부친 가족은 북한 (철원-평강)에서 대지주 출신으로 해방 이후 서울로 넘어 오셨구요. 모친 쪽은 외할아버지부터 아주 보수적인 목사님 집안입니다. 숙부는 9.28 수복 직전 때 당시 서울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 당국에 체포 됐습니다. 가족들은 납북됐다고 하는데 저는 좀 더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사찰(대공)계통 경찰관으로 북한의 후퇴국면에서 체포됐다면 결과는 보나마나일 것 입니다. 출신성분으로 치면 빨갱이는 고사하고 집안에서 서북청년단이 나오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지경이지요.
000 님의 노무현 경험담 잘 들었습니다.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품격판단의 기준은 이념의 차이를 막론하고 대동소이할 것 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그가 가진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논할 때와 개인의 진정성이나 인격을 말할 때는 주제 자체를 구별해야 되겠지요.
000 님이 이명박 대통령을 별로 안 좋아하시듯이 저도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는 그 분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파병 이후에는 작은 기대조차 접었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옛날부터 그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인상이란 꼭 거창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소한 스침 속에서도 필이 꽃히면 강한 자국으로 남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입니다.
1989 년 4 월 말에 부산교대 학생 하나가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뇌사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지요. 당시 나는 전민련(아마 아실 겁니다) 편집기획실 간사 자격으로 그 학생의 부모를 면담하고 그 여학생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부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 월 3 일 동의대 사태가 터집니다. 전민련 본부에서는 부산에 내려와 있는 저에게 사태파악과 취재를 우선 시작하라고 해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는 학생들을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 당시 경찰 분위기는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조차 분향소에서 봉변을 당할 정도로 험악했습니다.
본부 박용일 변호사와 부산의 김정남 씨(실화니까 실명공개해도 상관없겠지요) 등의 주선으로 노무현 의원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노무현은 당시 통일민주당 부산 동구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가 학생들이 수감돼 있던 경찰서 (이름 생각 안 남) 서장(황 모 씨였음)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것 입니다.
그 자신도 바쁘고 잘못하다가는 서장 친구고 뭐고 이성을 잃은 경찰관들에게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개의치 않고 직접 전화를 걸어보고 양해를 구하고, 상황을 일일이 물어보고, 경찰서까지 같이 가 주는 등 차분하게 일 처리를 착착 해 나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그 경찰서의 서장실에서 서장 입회 하에 이른바 주모자로 분류된 학생들을 만날 수가 있었고 유치장까지 내려가 학생들을 면담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마지못해 우리 일행을 안내하면서 적의에 찬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던 그 경찰서 직원들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군요.
당시 쟁점이 발화 원인이었는데 그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학생들이 화염병을 먼저 던진 게 아니라 시너통이 싸여있는 위험한 건물내부에서 총류탄을 마구 발사한 경찰측에 책임이 있다는 요지의 특집기사를 쓴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그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딱 두 차례밖에 없지만, 내가 본 그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한 일은 마무리를 짖고 확인까지 하는 아주 성실한 인간형이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내 작은 경험 속에서 그의 인간형에 대해서만큼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고 다른 분들은 또 각자 나름대로의 시각이 있겠죠.
저는 그 분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남긴 일들이나 명쾌한 논리-철학 이런 것 보다는 작은 일상에서 사람됨이 돋보였던 기억이 더 남습니다. 하기 싫으면 얼굴에 싫은 표정이 금방 드러나고, 마지못해서라도 일단 도와주기로 한 것은 기대도 하지 않은 것까지 마무리를 져 주는 성실한 자세, 이런 일들이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000 님의 의외의 노무현 칭찬을 읽으며 저도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을 좀 보태봤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 또 나타나 본 글보다도 더 긴 댓글을 늘어 놓아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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