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한국시간 29 일) 우리는 그를 땅에 묻는다. 동시에 그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묻힐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보여준 그 많은 사람들이 쏟아낸 진심 어린 눈물과 애도는 그가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 깊은 의식 속에 어떤 존재로 각인되어 왔는가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지금 이 순간 회한과 자책으로 마음을 가누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직 간접적으로 그의 죽음을 야기하는데 동기를 제공했거나 고의적으로 방조한 사람들이다. 그가 죽음으로서 항거하고자 한 대한민국 사회의 질곡은 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가 않다. 표면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이 진보진영 전체를 향해 무자비한 복수극을 시작하는 와중에, 그 첫 번째 타깃이 된 자신에 대한 검찰의 모략수사자체가 억울해서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살한 것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그보다 깊고 복잡하다.
우선 검찰은 그에게 무엇을 선택해도 도덕적 파멸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수사 메커니즘을 만들어 놓고 그에게 무조건 항복을 강요했다. 아니라고 말 못할 것이다. 그 검찰의 수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사람이다. 아마 그는 이 게임이 아주 잔혹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치킨게임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투신자살 소식을 접하자 마자 사표를 던져버렸다. 결과를 예상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때 그 순간 그에게 든 생각이 ‘게임에 졌다’는 낭패감이었는지 ‘결국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는 죄책감이었는지는 본인이 밝힌 적이 없으니 알 도리가 없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이명박 정권이 ‘박연차 프로젝트’라는 도박판을 벌인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참여정부 수장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것을 매개로 방대하게 뿌리내려있는 이른바 ‘좌파 10 년 잔재’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고, 둘째, 자기들 내부의 골치거리인 박근혜 측근 중 일부를 제거하는 부수입도 챙긴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 방법이 ‘이념공세’ 같은 진부한 공작보다는 유용하긴 하지만 ‘노무현 개인’의 성격상 여러 가지 형태의 위험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사전에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경호처와 검찰의 정보라인을 통해 그들이 면밀히 살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었다. 물론 그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 정보라인은 권력 핵심부에 ‘이 작전의 위험성’을 계속 타전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의 수뇌부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그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즈음 ‘노무현은 하이에나’라는 우스개 소리가 시중에 퍼져나갔다. 하이에나는 암컷과 새끼가 죽은 짐승의 시체를 뜯어먹는 동안 망을 봐 준다는 동물이다. 그들의 목적은 노무현을 기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혐의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하이에나’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매장을 하자는 것 이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부엉이바위 자살사건’ 현장에는 소극적으로 동참한 또 하나의 공범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름아닌 대한민국 진보진영이다. 이 의외의 공범은 고인이 된 노무현이 20 년이 넘게 몸과 마음을 의탁해 온 친정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진보진영은 이 외롭고 가엾은 사나이에 대한 검찰의 자살몰이가 진행되는 동안 방관자적 조롱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부인과 자녀에게 전해졌다는 그 돈이 대가를 바라고 준 뇌물이 아니라 일종의 ‘전별금’ 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받은 돈의 성격과 검찰수사의 방향이 전혀 격에 맞지 않는데도 그들 대부분은 거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노무현과 철저하게 거리 두기’에만 전념했다.
대한민국 진보진영의 노무현 따돌리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고출신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이른바 학출(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이 학맥과 인맥으로 권력구조를 형성하고 있던 진보진영에서조차 비빌 언덕이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전체를 기준으로 할 때만 ‘주변인’이었던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에서 조차 주변인이었다. 대한민국 전체의 주변인으로서 당한 가장 대표적인 수모가 탄핵소동이었다면 진보진영의 주변인으로서 받은 가장 대표적인 따돌림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당한 무시와 천대일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그런 주변인 대접이 치사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야비했던 이유란 다른 게 아니다. 주변인인 그가 ‘인맥으로 똘똘 뭉친 주류’ 보다 훨씬 똑똑하고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이건 진보진영이건 주변인이 주류보다 똑똑하거나 인격적으로 더 훌륭해서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진보진영으로부터 조차 의붓자식 취급을 받으며 외면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범인 검찰총장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사표를 집어 던진 것과는 달리 공범인 진보진영의 논객들은 한 이틀 정도가 지나서야 하나 둘씩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고 한마디씩 조의를 표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내놓은 핑계가 아주 그럴듯했다.
“먼저 노무현을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조의를 표하고 나서 그와 다소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이 나오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다니까 자책감이 들어 그랬는지 그 논리 정연하던 이빨꾼들의 논조들이 하나같이 횡설수설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들이 예전에 썼던 글에선 일찍이 본 기억이 없는 ‘미안하다’는 말을 누누이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경황 중에도 “그런데 내가 전에 비판했던 문제를 번복할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다”며 ‘자기가 잘난 것’은 불변의 사실임을 천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써 놓고 또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이제 와서 내 주장을 번복하는 것은 고인을 오히려 모욕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친절하게 달기도 했다.
누구를 새삼스레 비판하는 말이 아니다. 나 스스로가 공범이었음을 자백하는 말이다. 나는 그의 죽음 이후 이런 생각을 들었다. 학맥과 지연을 토대로 한 편견에 의지하지 않고는 홀로 생각해서 가치판단을 할 능력이 결여된 병신 같은 인간들이 주류를 이루고, 그 함량미달 주류가 만들어 놓은 문화 속에 수 십 년 간 갇혀 있었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게 인간 노무현은 참으로 과분하고 사치스러운 대통령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 과분과 사치의 대가로 이런 비극이 초래된 것이지만 좌파건 우파건 노사모건 조중동이건 며칠이나마 착잡하고 황당한 마음으로 이 비극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행운 중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윌 헌팅이 숀 교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비견될 만 한 행운이 아닐까? 그리고 이 행운은 이 바보 같은 사나이가 대한민국에 마지막으로 선사하고 간 선물일지도 모른다.
노짱, 가을에 봉하마을에서 뵙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미안합니다.
강현 (에드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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