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고 있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변하고
있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미국 기독교 우파의 지나친 근본주의 경향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 동안 그와
그의 정치-종교적 동지들이 무수히 행했던 다른 종교에 대한 정죄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습니다.
Newsweek 최근호(8월 14 일자, 제목: Pilgrim’s Progress)에 실린 인터뷰는 Jon Meacham
기자의 조심스러운 필법과 그레이엄 자신의 완곡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화를 감지하기엔 충분한
내용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그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복음주의 목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가지 예로는 1990년
George 부시 전 대통령에게 이라크 침공의 신학적 정당성을 설득해 걸프전쟁을 일으킨 배후 중의 하나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요즘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아들 플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입니다.
오는 10 월 20 일부터 위니펙에서 열릴 예정인 ‘Flanklin Graham
Festival’을 주재하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할 그의 입국을 거부하라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랭클린은 9. 11 직후 이슬람을 사악한
종교(a very evil and wicked religion) 라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번에 캐나다 이민부(Department of Immigration and
Citizenship) 에 의해 증오범죄 혐의자에 대한 입국거부 심사대상으로 취급 당하는 수모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 87세인 빌리 그레이엄은
지금 North Carolina 에 있는 자택에서 부인 Ruth와
함께 요양 중입니다. 그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서에 나타나 있는 모든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으며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성서 말씀과 신학적 논제들의
세부적인 항목 하나 하나에 대해서 의심하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He is an
evangelist still unequivocally committed to the Gospel, but increasingly thinks
God's ways and means are veiled from human eyes and wrapped in mystery. "There
are many things that I don't understand," he says. He does not believe that
Christians need to take every verse of the Bible literally; "sincere
Christians," he says, "can disagree about the details of Scripture and
theology—absolutely."
많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동의하는 이 말이 새삼스럽게 신선하게
들리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1920년대 자유주의와의 교리논쟁에서
완패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정치-사회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자신들의 신앙노선으로 삼은 채 줄곧
기도실에만 처박혀 있던 기독교 우파를 세상으로 다시 끌고 나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기독교
우파가 정치적 행동과 발언을 재개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의 공이 지대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레이엄은evangelist 로서 주로 보수 기독교 대중을 신앙적으로 결집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Jerry Falwell 이나 Pat Robertson 같은 보다 공격적 성향의 목사들은 The Moral Majority 나
Christian Coalition 같은 문화전쟁을 벌이기 위한 반동단체들을 조직해 바람을 잡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1994 년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는 깅그리치 반동을 성사시켰고, 이 사건은 차별과 폭력이념으로 무장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집단이 정치전면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신학적 개념에서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는 아니지만 그들과의
전략적 연대를 함으로써 미국사회의 퇴행적 보수화를 가져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랬던 그가 요즘 자택의
병상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는 겸손(humility)입니다. 그가 일생 동안 설교 강단에서 염두에 두었던 주제는 전도와
개종이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가 그에게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결정할 일’ 이라는 것 이외에 자기가 할 대답이
없다는 데에까지 사고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A unifying theme
of Graham's new thinking is humility. He is sure and certain of his faith in
Jesus as the way to salvation. When asked whether he believes heaven will be
closed to good Jews, Muslims, Buddhists, Hindus or secular people, though,
Graham says: "Those are decisions only the Lord will make. It would be foolish
for me to speculate on who will be there and who won't ... I don't want to
speculate about all that. I believe the love of God is absolute. He said he gave
his son for the whole world, and I think he loves everybody regardless of what
label they have." Such an ecumenical spirit may upset some Christian
hard-liners, but in Graham's view, only God knows who is going to be saved.”
As an evangelist for more than six
decades, Mr. Graham has faithfully proclaimed the Bible's Gospel message that
Jesus is the only way to Heaven," says Graham spokesman A. Larry Ross. "However,
salvation is the work of Almighty God, and only he knows what is in each human
heart."
기자의 말마따나 그레이엄의 새로운
사고는 기독교 우파의 강경세력을 분노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반성은 죽음을 눈앞에 둔 한 분야의 거장이 통과하고 있는 진지한 실존의 고민임은
분명합니다.
그는 인터뷰 과정을 통해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그의 심경을 나타내는 말들을 했습니다.
전쟁으로 고통 받는 양쪽 모두를 위해 기도 드린다는 것. 이라크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부시정권에 대해 시아파와 수니파를 어떻게 이간질 시킬 것 인가 등에 대한 정치적인 조언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안 하기로 했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성서예언의 실현을 위해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적그리스도인 이슬람을 박멸해야 한다며 반 미치광이가 되어 날뛰고 있는 그의 옛 동지들과는 사뭇 다른 입장이었습니다. 자유주의든 보수주의든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했습니다. 부인
Ruth에게 키스하기 전 두 세 명의 소녀와 키스한 것이 아직까지도 약간 죄스럽다는 소박한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All my life
I've been taught how to die, but no one ever taught me how to grow old,"
목숨을 걸 신조는 알았지만 경륜에서
터득되는 관용은 미처 몰랐었다는 이 철학적인 고백이 정확히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기자의 첨언이 이 고백의 의미를 짐작하게 합니다.
You can see more
from a mountain, and from the perspective of years
우연하게 보게 된 Newsweek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가 일생 동안 가져왔던 철학의 근본을 송두리째 변경하고 다른 사상으로 전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좌든 우든 인생의 어떤 경지에서 ‘당파성에의
미련’을 버리고 사물을 욕심 없이 관조할 때 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매듭은 묶은 자가 풀 때 모양새가 좋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레이엄이 매듭을 묶고 다닐 때 스스로 희망했던 미국과 세계의 그림이 오늘의 모습은 아니라는 통회와 반성에서 그가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의 이런 변화는 해외는 물론이고 문화전쟁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미국에서도 환영을 받는 것 같습니다.
Graham's spirit of moderation, of concern for both sides, is
welcome not only overseas but at home, for Americans seem hungry for a ceasefire
in the culture wars.
사림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것일까. 한 나라와 전 세계를 갈등과 증오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데 일조를 하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 것
일까.
이건 비단
그레이엄 목사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 같습니다.
Newsweek기사전문: http://msnbc.msn.com/id/14204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