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달린 십자가, 생쑈 개신교

바퀴 달린 십자가 끌고 골고다를 오른다고?

sarnia 2006. 1. 22. 12:00

지난 19 본국에서는 교파를 망라한 보수교회 목회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신도 5 여명이 서울 영락교회에 모여 기독교 사학 수호를 위한 비상구국 기도회라는 이름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사학법을 개정하는 투쟁에 순교자의 정신으로 매진하자 목사들의 외침에 참석자들은 연신 아멘’ ‘할렐루야 합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7-80 년대 운동권 종교집회에서나 들을 있었던 어느 민족 누구게나라는 장엄한 곡조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을 위해 보충설명을 하자면, 영화 바보선언에서 주인공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투무를 깔리는 배경음악이 바로 노래입니다. 분들이 평소에는 부르지 않던 찬송가여서 인지 낮은 단조의 비교적 쉬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합창으로 박자를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입니다.

 

동안의 사학법 반대투쟁이 성적조작 전횡 도둑질을 다시 합법화 하라는 주장에 다름 아니라는 강력한 국민여론에 부딪혀 한나라당 내부에서 조차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분들은 모르는 같았습니다. 이미 재정의 90 % 이상을 국민세금인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사학이 최소 정원의 사외이사조차 거부한다는 것은 낮짝에 철판을 어거지라는 비난도 들어 적이 없는 했습니다. 강단에선 목사 분들은 순교’, ‘고난같은 도대체 걸맞을 같지 않은 거창한 단어를 뱉더니 드디어 서울시청까지 고난의 십자가 행진을 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적 상징이자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의 처절한 고난의 형틀인 십자가를 지고 킬로미터를 행진하겠다는 목사 분들의 결의에 좌중은 숙연해 지기까지 했습니다. 비록 거친 언덕길이 아닌 평평한 아스팔트 길이요. 십자가를 번갈아 대신 짊어지고 명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준비된 데다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과 앰뷸런스까지 대기하고 있는 마당이었지만 그래도 때까지는 모두가 진지하게 분들의 결의를 받아들이는 했습니다. 문제는 십자가가 등장하고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깎은 서방처럼 말끔하게 다듬질된 십자가 모양을 나무토막의 어깨가 닫는 부분에는 두툼한 헝겊이 둘둘 말려 있었고 땅이 닫는 부분에는 바퀴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이상한 십자가를 고난에 겨운 표정으로 짊어지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최성규 목사를 바라보며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잠깐 착각을 해야 했답니다. 주최측이 혹시 행사계획을 변경해 거리 행진 대신 코미디 풍자극 같은 것으로 행사 뒤풀이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번째 예수 역을 맡으신 한기총 회장이 바퀴 달린 나무토막을 끌고 교회 정문을 나서자 오히려 기자들이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동참자가 아닌 취재진의 입장이긴 했지만 아마 같이 거리로 나서기가 망신스러워서였을 것으로 짐작합니다.서울 시내의 대로를 행진하고 있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행렬을 옆에서 취재하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벌개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었을 기자들의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아마 길을 가던 시민들은 바퀴 달린 나무토막을 심각한 표정으로 끌고 가고 있는, 신속한 해석이 불가능한, 행렬을 바라보며 저게 대체 무슨 지랄을 하고 있는 걸까하고 한참 고개를 갸우뚱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종교에 있어서 근본주의 복음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등을 둘러 논란이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한국의 대형 보수교회의 목사 분께서 쓰나미 희생자들을 가리켜 크리스마스에 교회 안가고 놀러 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벌을 내린 이라는 개소리에 가까운 설교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의 보수 기독교의 문제들 일부는 세계관이 아닌 정신병리학적인 주제가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아예 한국 보수 기독교의 내노라 하는 목회자 분들이 집단으로 모여 소가 웃다가 기절을 나무토막 행진 소동 벌이는 것을 보고 분들의 문제는 다른 아무것도 아닌 정서지능의 모자람에서 오는 어쩔 없는 행동의 한계라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가 분들의 문제를 다루었더라면 다음과 같이 코멘트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들, 웃기고들 자빠지셨어요라고. 그런데 저는 왠지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분들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캐나다 사람들 농담처럼 두개골의 나사가 빠졌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해골이 잘못 끼워진 건지. 이제는 그냥 눈물이 나려고 정도로 안쓰럽기만 하답니다.

 

(강현. 에드먼턴 sarni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