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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Foreign Policy (아래 기사와는 다른 한국의 multiculturalism 에 관한 기사에서)
아직 한국에서는 이 기사를 보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이번에도 역시 제가 먼저 전달드린다.
해외에 사는 동포 어느 누구라도, 해외언론에 의해 고국이 난타당하면 기분이 몹시 나쁜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그 언론이 Foreign Policy (FP)와 같이 전세계적 영향력이 막대한 매체라면 그 기사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은 내 말을 하는 대신, 칼럼내용을 중심으로 약간의 해설만을 덧붙이려 한다.
독자들 중에는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FP 칼럼이 사실을 왜곡했거나 대한민국 정부와 다수 국민들을 악의적으로 모욕했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다.
그런 분들께서는 FP 홈피나 FP 칼럼니스트 S. Nathan Park 에게 반론이나 항의를 하실 것을 권장한다.
위싱턴DC에 사는 한국계 변호사 같은데 FP 에 로긴하면 필진과의 토론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론은 매체나 칼럼니스트 자체를 표적으로 하기보다는 이 매체를 접하는 광범위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서술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제목과 부제, 극단적인 표현들과 중요한 문단을 몇 개 선택해서 해석을 달았다.
칼럼 전문은 링크를 통해 읽으실 수 있다.
칼럼의 제목과 부제를 포함해 읽기에 따라 모욕으로 느껴질 수 있는 문장들은 이런 것들이다.
South Korea Is Going Crazy Over a Handful of Refugees
한국은 몇 명 되지도 않는 소수의 난민들 때문에 미쳐가고 있다.
Feminists, the young, and Islamophobes have allied against desperate Yemenis.
Yet on the ground, grotesque marriages between progressive principles and Islamophobia abound.One might expect, for example, that South Korean feminists newly energized from a highly successful #MeToo campaign would express solidarity with the vulnerable refugees. Instead, many feminists reinforce myths that Muslim refugees are potential rapists, drawing from a mixture of real and fake news from Europe.
한국 국내에서 난민/이민문제가 중요한 이슈이든 아니든, 제주도 예멘인들의 운명은 전 세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관심의 촛점은 예멘인들 자체보다는 한 줌도 안되는 그들을 향해 보여주고 있는 Korean general public의 지나칠 정도로 무관용적인 자세입니다. FP 칼럼은 특별한 게 아니구요.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밖 여론의 향후 천착점을 제대로 포착한, 저널리즘 시장주의에 충실하게 따른 글에 불과합니다. 칼럼은 그 정도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구요.
한국 밖에서 사람들이 놀라고 있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한 해에 난민만 89 만명이 몰려든 독일도 아니고, 매년 30 만 명 이상의 이민자들이 영주권을 받고 들어오는 캐나다도 아니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매년 150 만 명을 이민자로 받아들인다는 미국도 아니고, 고작 562 명의 난민신청자가 생겼다고 해서 혐오가 저토록 확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함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집중취재대상이고 (아마도?) 사회학자들에게는 한국의 '난민현상'이 흥미로운 연구대상으로 떠 오르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겠지요.
그들보다 한국국내 사정의 내면을 잘 알 수 있는, 예를들자면 다문화사회에서 오랜 세월 뿌리내리고 살아 온 해외동포들의 눈에는 외국의 관찰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다른 문제가 보이기도 합니다.
종편같은데 논객타이틀을 달고나와 지껄이고 있는 이른바 '선택된 인텔리'들이 난민문제를 보는 수준을 가늠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실명을 거론해서 당사자들에겐 미안합니다만, 황X수나 이언X 같은 사람들을 일부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FP 의 필진보다는 오히려 이 사람들이 듣보잡 부류일 수 있는데 뭐하는 사람들인가 살펴보니 한 사람은 무슨 연구소 소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더군요.
이 사람들 하는 이야기가 각각 배꼽을 잡고 나뒹굴만큼 가관입니다. 한 사람은 '동쪽에 대고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어떻게 같이 사나, 절하려면 남의 나라 출입국관리소 마당에서 하지말고 너희 나라에 가서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죽든 살든 거기서 하라' 는 말을 거침없이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난민이라면 아이업은 여인들이어야 하는데 왜 젊고 건장한 남자들이냐'는 식의 황당하기 짝이없는 소리를 하고요.
이방인을 대하는 감성지수역시 일종의 정서지능일진대, 이 사람들의 하는 말로 미루어봐서는 난민을 보는 그들의 수준이 마치 공산당 뒤통수에 뿔이 달린 줄 알고 살았던 1950년대 반공소년이나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난 철갑선을 보고 실신해 들것에 실려간 19 세기 말 조선백성과 다를 것이 없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한국에는 홍세화 씨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이순신 장군이 당시 전혀 조선사람 같지 않은 조선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듯이 홍세화 씨 같은 분 역시 전혀 한국사람 같지 않은 한국사람이라고 말해도 별 오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홍세화 씨의 경우 그가 20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프랑스에서 스스로 난민으로 살아봤던 경험이 인식의 지평자체를 앞에 예를 든 두 사람과 달리 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 입니다.
제주도 예멘인 문제는 이런 코미디같은 가십들이 이슈의 본류보다도 더 관심거리가 되어 한국사회 주류의 막무가내식 폐쇄성에 대한 외부의 강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의 난민법이나 난민승인제도, 승인율, 출산율 폭락에 따른 인구절벽현상으로 앞으로 한국이 북미수준의 이민수용비율 (인구대비)을 정책화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측 등등과 같은 주제의 본류는 다 사라지고 이 나라 내부의 저 거대한 혐오의 물결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와 같은, 참 자존심 상하는 문제에 그들이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상하고도 비극적인 상황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