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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쯤, 베이스먼트에 굴러다니고 있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제목은 The First Christmas.
오래 전에 와이프가 아이에게 생일선물로 사 준 책 같았다. 방금 서점에서 사 온 새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반짝거리고 있는 걸로 보아 아이는 이 책을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침실로 가지고 올라갔다. 잠 자기 전 침대에서 몇 페이지씩 읽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더니 결국 책 한 권을 다 읽게 됐다. 저자는 두 명인데, 한 명은 미국 오레곤 주립대학 종교학부 은퇴교수고, 또 한 명은 미국의 성서신학자다. 두 저자 모두 학자로서 보다는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예수의 탄생신화에 관한 것이다. 예수 탄생신화가 실은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 지배하던 로마의 '황제탄생신화'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문학의 형태로 제작된 것이라는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복음서에 나타난 동정녀 탄생 이야기와 히브리 예언서들의 관계가 고대 로마의 신화 이야기들과 어떻게 유사한가에 대해 요령있게 풀이하고 있다. 예수를 '신 의 아들' 로 생각하는 사상은 물론 족보, 잉태, 탄생, 부활에 이르기까지 아주 유사한 신화 이야기가 대척점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예수가 태어날 당시 로마황제 Caesar Augustus 의 조상, 족보, 탄생신화가 그것이었다.
옥타비아누스, 즉 Caesar Augustus 는 트로이의 영웅 Anchises 와 쥬피터의 딸 비너스를 조상으로 출발한 율리우스 가문 출신이다. 옥타비아누스의 어머니 아티아를 임신시킨 것은 아폴로신의 '성령'이었다. 아티아의 남편은 그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앞으로 탄생할 그의 아들이 태양처럼 빛나는 꿈이었다.
트로이 전쟁.
로마 탄생을 노래한 서사시 Aeneid 는 이 전쟁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Aeneas 로부터 로마의 '메시아' Caesar Augustus 의 족보가 출발하는 걸로 묘사했다.
신화는 항상 비극에서 출발해야 빛을 발하는걸까? 트로이 전쟁은 승리한 전쟁이 아니라 패배한 전쟁이었다. 어떻게 어처구니없이 패배했는가를 실감나게 알아보려면 '트로이'라는 영화를 보면 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서 묘사하고 있는 이 전설적인 전쟁은 기원전 10 세기 무렵에 일어난 신화적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오복음 제 1 장을 장식하고 있는 예수의 족보 이야기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낳고 또 낳고......) 는 그보다 먼저 제작된 로마 황제 Caesar Augustus 의 신화적 족보 스토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이 대목을 다룬 이 책 해당 쳅터의 중요한 목적은 제국의 탄생신화를 제작한 로마의 시인 Virgil 의 작품 Aeneid 를 복음서 저자들이 표절했거나 차용했는지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그 스토리들이 함유하고 있는 은유적 의미들을 찾아내고자 하는데 있는 듯 하다.
한 편 이 책은 복음서의 저자들이 소설적 기법과 용어들을 어떻게 용의주도하게 선택하여 제국주의 저항문학을 극적인 형태로 완성시키려고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예수탄생신화는 비단 로마 황제탄생신화에서 뿐 아니라, 히브리 경전에 나오는 모세 탄생신화에서도 그 형식을 빌려왔다.
이 책의 저자들은 복음서에 사용된 디테일한 용어의 의미를 추적하여 그 용어를 사용한 의도와 배경까지 밝혀내기도 한다. 가령 '이스라엘'이라는 용어와 보다 반로마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유대'라는 용어를 복음서를 작성한 문필가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적으로 사용했는가를 가려낸다.
그렇다면 이 책은 반기독교 서적인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 책은 반기독교 서적이 아니라 매우 똑똑한 기독교 서적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더 이상 쓸모없어진 고대 기독교의 신화적 명제들을 그냥 폐기처분하는 대신, 그 신화적 명제들 안에 숨겨져 있는 은유적 의미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저자들이 그런 노력을 하는 이유가 이미 임종이 임박한 그 신화적 명제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가 전혀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예수탄생신화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일방적인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다른 차원의 의미부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탄생의 신학적 의미와 역사적 사실이 서로 다른 별개의 개념이라는 인식은 서구교회에서 이미 상식에 속한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서의 예수탄생은 전혀 신비로울 것이 없었다. 그의 탄생배경의 실재적 모습을 시사하고 있는 기록은 기독교경전 요한복음 8 장 41 절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전략… Then they said to Him, “We were not born of formication: we have one father… God”
이 말은 예수의 탄생배경을 잘 아는 군중들이 예수에게 대꾸하며 돌려 준 말인데, “우리는 (너 처럼) 음행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는 의미다.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임신하는 것을 천시하는 것을 넘어 범죄시했는데, 예수가 마리아의 비합법적 임신을 통해 탄생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이미 알고 그를 조롱했다는 말이 된다.
성서의 문학적 의미와 역사적 사실을 구분할 수 있어야 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 저자들의 의견같다. 만일 의미와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탄생 스토리를 문자적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 유대인 여자의 비합법적 임신을 '동정녀 탄생사건'으로 둔갑시켜 2 천 년 가까운 세월동안 사람들을 속여 온 사기극이라는 비난 밖에는 얻을 것이 없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그다지 어려운 책이 아니지만,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예 독해 자체가 불가능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이야기를 실제 일어난 사건인 줄로 믿고 있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 책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전혀 존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이 책의 두 저자는 The First Christmas 를 쓰기 전인 2007 년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고난주간)을 다룬 “The Last Week” 을 출간했다. 예수의 마지막 주일이란 당연히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해 사망하기 전 일주일, 즉 종려주일부터 성금요일 (Good Friday) 까지를 말하는데, 이 책은 보너스로 예수 사망 후 토요일과 부활절 일요일(Easter Sunday) 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는 모양이다. “서술하고 있다” 라고 쓰지 않고 “서술하고 있는 모양이다” 라고 쓴 이유는 내가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인데, 혹시 읽게 되면 내년 (2014 년) 부활절 축하 메세지로 그 책 독후감을 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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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그래왔지만, 본문에 의도적으로 히브리경전 기독교경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참고로 싸르니아는 신약 (New Testament) 구약 (Old Testament) 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히브리경전 또는 기독교경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남의 종교 경전 (유대교가 사용하는 히브리성서)을 가리켜 멋대로 구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의 무례함과 무식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오만한 용어다.
어쨌든,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하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