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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 월 1 일은 대한힝공 007 기 격추 30 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렇다면 9 월 2 일은 무슨 기념일일까?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9 월 2 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 국민 21 명의 목숨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 준 날이다.
그 대한민국 정부는 2013 년에 존재하는 현재의 정부가 아니라
2007 년에 존재했던 과거의 대한민국 정부다.
지금으로부터 6 년 전인 2007 년 9 월 2 일
아프카니스탄 피랍자 19 명이 석방되어 돌아왔다. 피랍 51 일 만이다.
인질들이 전격 석방되기 며칠 전, 세계는 AFP 통신발로 보도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탈레반 성명을 읽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The decision to free the pair had been made by the Taliban leadership council, headed by Mullah Mohammad Omar, as a gesture of goodwill towards the Korean people and South Korean diplomats negotiating for the hostages' release.”
‘한국 국민들과 협상단을 향한 탈레반 지도위원회의 선의의 표시’ ‘한국 국민과 탈레반의 좋은 관계를 위하여’ (Sake for good relationship between Korean people and Taliban) 등의 우호적인 표현이 탈레반 대변인을 통해 나온 것은 천만 뜻밖이었다. 한국 국내에서 미국책임론이 제기되고 미국의 아프칸 침략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가시화된 직후였다.
탈레반 지도부의 이 같은 발언들은 ‘인질들의 기독교 선교행위를 적대적 선전포고로 본다’는 종래의 입장을 뒤집는 변화로 이 때부터 인질 살해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 탈레반은 철저하게 명분을 중시하는 이념형 인물들이 주도했던 전투적인 조직이었다. 그들은 샘물교회 선교단을 종교개종공작을 위해 적국에서 파견된 문화간첩들로 규졍했고 전원 처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실제로 두 명이 살해됐다.
그런 그들이 마음을 바꾼 것은 무슨 이유때문이었을까?
다시 말해 탈레반이 당초의 내렸던 '인질처형' 의사결정을 스스로 뒤집을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최대의 공로자는 누구였을까?
첫 번 째 공로자는 말할 것도 없이 대다수 한국 국민 과 네티즌들이었다. 그들은 팔을 안으로만 굽히지 않고 냉혹할 만큼 차분한 이성으로 사태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한국 개신교 주류의 공격적인 해외전도행위를 명렬히 비난하는 압도적인 국내여론을 세계는 경이로운 눈으로 보며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었다. 이것이 세계 각국의 무슬림들 마음을 움직였고, 이들이 행사한 유형 무형의 압력이 탈레반으로 하여금 인질 처리 지침을 ‘적성국 이교도들에 대한 보복 응징’ 차원에서 ‘실리획득과 정치적 프로파겐다’ 차원으로 돌려놓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이때도 보수논객 김동길씨나 새문안교회 목사 이수영 같은 사람들은 탈레반을 악마로 규정하며 국내의 반 기독교여론을 피도 눈물도 없는 안티기독교와 좌파의 선동으로 몰아부쳤었다. 확신하건대 만일 그때 김동길 이수영 류의 탈레반 비난 아우성만이 국내여론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인질들은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은 여전히 도움이 안 된다.
두 번 째 공로자로,,, 당시의 정부협상단, 국가정보원, 외교통상부 그리고 청와대 관계 참모진을 칭찬하고 싶다. 그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주도 면밀하게 추진한 협상공작이 아니었다면 인질들이 풀려나기란 난망했을 것이다. 물론 정부의 판단착오는 있었다. 협상 초반, 미국과 아프칸 괴뢰정권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하고 시간 낭비를 하는 바람에 인질 두 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여기서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당시 미국의 부시 정권이 한국정부의 인질석방을 위한 노력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방해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질들의 틀림없는 죽음을 몰고 올 가즈니 주 탈레반 거점에 대한 NATO 군의 대대적인 지상군 공격을 감행하려고 시도하다가 한국 정부의 거센 반발로 계획을 취소한 적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협상단과 탈레반 대표들간에 인질 석방을 위한 직접 협상이 가시화되자 전선 여러 곳에서 탈레반 게릴라 부대에 대한 파상공세를 강화해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위험한 짓거리 마저 서슴지 않았었다. 외교라인을 통해서는 탈레반에 단 한 푼의 몸값도 지불할 생각을 말라는 압력도 가해졌다. 개새끼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국정부는 인질협상을 거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추진하고도 비교적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인질들을 구출하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미국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 전화위복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미국이 아프칸 괴뢰정부를 앞세워 한국정부의 애원에 가까운 간곡한 요청을 야멸차게 무시하고 따돌린 행위는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두고 두고 갚아야 할 악성 부채로 남았었다. 물론 미국의 한국에 갚아야 할 이 악성부채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조건없이 탕감해 준 꼴이 되긴 했지만……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나오는데 공을 세운 세 번 째 공로자로,,,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탈레반 지도부에게 보낸 마지막 호소문은 비록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던 천호선 씨의 입을 통해 발표되기는 했지만, 그 글을 그가 직접 밤을 세우다시피하여 작성했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화다. ‘생명에 대한 본능적 애정’에서 우러나온 듯한 이 호소문은 절심함에서 나온 정직함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그는 미국과의 외교마찰을 각오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요구를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호소문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탈레반 지도부에 직접 호소하는 형식으로 발표됐다.
이 호소문이 전 세계에 타전되고나서,, 탈레반은 인질처리지침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완전히 변경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싸르니아는 ‘친노’가 아니다. 개인으로서의 노무현에게는 일단의 장점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2007 년 여름,,,,,, 피랍된 스물 세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노력 안에서, 그 나름 대통령으로서 할 부분의 역할을 최선을 다 해 수행했다는 점이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잘한 것은 잘한 것이다.
웃기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 전두환 씨가 기자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왕년에 공수훈련도 받고 했으니 직접 가서 인질들을 구출하고 싶다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 이런 소리를 또 늘어놓았었다.
"이번에 말이야.. 우리 정부, 정말 잘했어..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암튼
6 년 전 오늘 아침,
잔존 인원 열 아홉 명이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림 1: 본문 내용 중 일부는 제가 당시 작성했던 글을 재인용 표시없이 재편집한 것임을 알립니다.
알림 2: 사진은 펌사진민데, 인물 중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두 분은 당시 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