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양심과 종교적 신념이 층돌할 땐 어떡하죠?

sarnia 2010. 2. 12. 09:09

오늘 오후에 잠시 짬이 나서 보게 된 인도영화 Water를 보고 느낀 점을 몇 자 적습니다.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할 때는 이 영화의 국적이 캐나다였습니다. 아마 감독이 인도 출신이지만 캐나다 시민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인도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인도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저는 이 영화를 인도 영화라고 부르겠습니다.  

Deepa Mahta 감독의 Water는 그 플롯이나 메시지도 훌륭하지만 몇 대사가 던지는 비수 같은 문제제기가 가슴에 와 닫는 영화입니다. 10 년 전쯤 이 감독의 또 다른 작품 Fire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인도사회에서는 어느 종교커뮤니티에서건 철저한 금기인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데 올케와 시누이가 벌이는 멋진 베드신이 통쾌하고도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Water 1938 년의 인도사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된 여자들이 겪는, 분노가 치밀 정도의 잔혹한 속박과 굴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여자들에게 잔혹한 굴레와 속박을 강요하고 있는 주체는 물론 그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와 사회관습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이른바남편 잡아먹은 여인들이 신의 명령에 따라 가야 하는 수용소입니다. 어떤 종교에 소속된 하나님이 그 따위 명령을 내렸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하나님을 그 수용소에 처박아 넣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들어 온 여인들의 수입원은 구걸과 매춘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두 명이라고 봅니다. 한 명은 결혼하자마자 늙은 남편이 죽는 바람에 첫날 밤도 치르지 못하고 친정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 수용소에 끌려 온 여덟 살짜리 꼬마 과부 Chuyia 이고, 또 한 명은 아홉 살 때 비슷한 경위를 거쳐 이 수용소에 들어 온 뒤 매춘으로 이 수용소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젊은 과부 Kalyni 입니다.

젊은 과부는 한 유복한 자유주의자 청년과의 사람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슬픈 자살의 길을 택합니다. 꼬마 과부는 그 수용소에서 평생을 보낸 어느 중년 과부의 손에 이끌려 마침 감옥에서 풀려나 이 지방도시 기차역에서 기도집회를 하는 마하트마 간디의 연설을 듣게 됩니다.

기도집회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 간디와 지지자들을 향해 중년과부는 꼬마과부를 안아 들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군가가 제발 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달라고…… 이 꼬마과부는 그렇게 기차를 타고 속박의 도시로부터 떠나갑니다.

그러니까 죽은 젊은 과부는 그 사회의 비극적 절망을, 기차를 타고 떠나는 꼬마 과부는 그 사회의 혁명적 미래를 각각 상징하는 셈입니다.

방금 한 번 본 영화를 가지고 더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건 무리라 이만 줄입니다. 다만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 있는 대사 두 개가 생각나 소개합니다.

신앙심이 깊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수용소에서 보낸 어느 중년 과부가 근엄한 설교자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What if our conscience conflict with our faith?” (양심이 신앙과 맞지 않을 땐 어떡하죠?)          

과부가 설교자에게 질문을 던지기 직전 설교자는 과부에게 간디의 석방소식을 전하며간디야 말로 마음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라며 똥 밟은 소리 (실천은 없이 말로만 지껄이는 위선적인 소리를 다섯 글자로 줄인 말)를 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에 불과하지만 마하트마 간디가 기차역에서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말 입니다.

“For long time, I have believed God is truth, but now I believe truth id God”

간디가 했다는 이 말의 한국어 번역은 각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아까 말한 대로 1938 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촬영지로 선정됐던 바라나시에서 이 영화의 촬영을 저지하는 폭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 곳에서 촬영을 못 했다고 합니다. 2000 년 일입니다. 이 영화의 말미 자막에 나오는 대로 Water 의 비극은 단지 1930 년대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오늘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인도에는 약 3400 만 명의 홀로된 여인들이 살고 있답니다. 여전히 횡행하는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을 온 몸으로 겪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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