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보고서 11

나는 전생에 여기 와 본 적이 있다

sarnia 2010. 2. 5. 15:17

태국에서 라오스 땅을 밟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배를 타고 단사오 마을로 가는 것이다. 뱃삯은 태국 돈으로 300 . 캐나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10 불이고 한국 돈으로는 12000 원쯤이다.

 

 

미얀마 메콩강변에 형성된 '파라다이스' .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카지노 구역 이름이다.  

 

현지물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10 불만 내면 국경도 넘고 배도 탈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몇 군데나 있는지 모르겠다.

 

길쭉한 목선을 타고 메콩강을 따라 올라가다 건물에 새겨진 커다란 십자가를 발견하기도 했다. 불교인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작은 강변 마을에 이렇게 큰 교회가 있다는 게 좀 의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교회도 외국인 전용인가? 상념에 잠겨있느라 그랬는지 사진도 못 찍었고 좀 엉뚱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 교회에 붙어있던 커다란 황금색 표어가 인상적이었는데, ‘Gold Loves You’ 라는 영어로 된 표어였다. 그걸 보고 역시 골든트라이앵글에 있는 교회라 표어도 현실적이고 특색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Gold’가 아니라 ‘God’라는 걸 알고 좀 맥이 빠졌다.      

 

 

 

어느 나라에 입국하던 우선 검역관-입국심사관-세관원 순으로 그 나라 사람들을 처음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게 상례다. 그러나 라오스 단사오 마을 선착장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저 계단 꼭대기에 요상한 포즈로 앉아있는 걸인 아주머니였다.

 

 

 

 

어찌된 셈인지 이 마을에서는 어른들 코빼기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관광객을 상대로 구걸을 하는 어린아이들뿐 이었다. 모두 일들을 나갔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여자들은 어디선가 구걸하는 아이들을 감시하고 있을 거고 남자들은 모두 움막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거라는 게 안내인의 설명이었다.           

 

남자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거라는 어느 가정집 입구

 

놀랍게도 나는 이 거짓말 같은 안내인의 설명 중 일부가 사실이라는 걸 곧 알 수 있었다. 선착장에서부터 따라다니던 열 살쯤 되는 여자아이에게 20 밧 짜리 지폐를 쥐어주자마자 그 아이는 쪼르르 달려가더니 어느 집으로 들어가 엄마로 보이는 어떤 여인에게 그 지폐를 건네는 것 이었다. 뭐랄까, 다른 생각은 안 들고 그냥 좀 어이없고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벌어진 더 놀라운 사태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내가 한 아이에게 지폐를 준 것을 알고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십 수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리 일행을 포위하고 일제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라오스 말이겠지) 를 중얼거리며 손을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런 비슷한 광경을 치앙라이 근처 Long Neck hill tribe village에서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비슷한 광경이란 어른들은 잘 보이지 않고 아이들만 방문객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말한다. 그 마을에서는 구걸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다만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실로 무엇인가를 짜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목에 쇠링을 차고 있는 카렌족 소녀

 

이 동네 여자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목에 쇠로 된 링을 차고 있었는데 5~6 세부터 차기 시작한 그 쇠링은 죽을 때까지 벗는 법이 없단다. 어른이 되면 링의 무게가 무려 23 kg에 달하는데 쇠링에 의해 길들여진 목에서 그 쇠링을 제거하면 경추골절로 사망한다고 한다.

 

 

국경수비대 소속 태국 병사다. 근무자세 꼬라지 하고는. 비껴 찬 M16 A1 소총 탄창에 들어있는 탄약은 아마 공포탄이 아닌 실탄일 것이다. 어쨌든 무장 경계병을 단독근무를 세우다니. 저런 식으로 근무서다 총이라도 빼앗기는 날에는 모가지 달아날 피플이 한 두 명이 아닐 텐데……

 

미얀마에 인접한 국경검문소다. 태국과 미얀마의 국민소득차이는 무려 30 1 이다. 그러다 보니 국경경비가 삼엄한 편이다. 국경마을인 메사이로 가는 길목 요소요소에서 검문을 하고 있는 태국 군인과 경찰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근무 중 틈틈이 관광객들의 사진도 찍어주고 있는 태국 군인. 하얀 셔츠 차림의 배 나온 아저씨의 복장과 포즈가 아주 점입가경이다. 애국기동단이나 재향군인회 회원인가? 그래도 자세히 보니 어떤 아줌씨가 팔짱을 끼고 있는 걸 보면 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게 정설 맞는가 보다. 편견섞인 발언이었나?

 

미얀마 마을 따찌렉 쪽에서 넘어오는 사람들. 태국인이 대부분이다.  

 

저 개천 너머가 미얀마다. 난생 처음 보는 미얀마가 내게 떠 오르게 하는 이미지나 기억은 무엇이지?

 

어떤 사물이나 개념이 등장했을 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예들 들어 명성황후 하면 청나라와 일본을 번갈아 가지고 놀았던 이이제이 외교를 떠 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을미사변의 여우사냥꾼 칼잡이들을 떠 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상상력의 폭이 좁아서 그런지 명성황후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게 고작 이미연이다 (여기서 고작이란 나 스스로의 폭이 좁은 상상력을 겨냥하는 단어이지 탤런트 이미연 선생을 가리키는 말이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같은 인물이라도 표현하는 단어에 따라 떠 오르는 이미지가 또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와 민비는 같은 인물이지만 각각의 단어에서 연상되거나 떠 오르는 이미지는 아주 다르다. 즉 민비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는 이미연이 아니라 일본공사 미우라가 가짜로 만들었다는 왕비복장의 식모사진이다.   

 

 

 

 

그러면 미얀마 하면 또 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군사독재, 88 8 8 , 아웅 산 수지 선생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미얀마 하면 떠 오르는 게 별로 신통한 게 없다. 그 나라의 옛날 이름 버마는 좀 다르다. 버마를 생각하면 즉시 떠 오르는 단어는 다름아닌  한글날이다.

 

1983 년 그 날 “DDD 아저씨가 버마에서 돌아가셨다는 성급한 소식을 전해 준 후배의 전화를 받고 TV를 켜며 잠시나마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던 그 환희의 순간, 그 해프닝이 벌어진 날이 바로 한글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DDD 아저씨 만큼 인복이 좋아 명줄 또한 긴 인간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남다른 장점이 하나 있는데 어느 분야에서 자기가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더라도 고개를 숙이고 배울 줄 아는 일종의 지적 솔직함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스승으로 모셨다는 서석준 (경제부총리) 과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의 그 날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도 한 말이지만 좋은 놈이건 나쁜 놈이건 조직의 보스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저 회색지붕 건물 뒤로 넘어가면 미얀마다. 저 바지 아랫단 접은 애국기동단 아저씨 여기서 또 만나네.

 

태국 국경마을 메사이에 형성된 상가. 불과 30 년 전 만 해도 이곳은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되는 생아편의 집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엄마 등에 업혀 손가락을 빨고 있는 아이. 아주아주 오랜 만에 보는 모습이다.  

 

찌는듯한 더위, 강렬한 햇볕, 앵앵거리는 파리떼, 채소 썩는듯한 재래시장 특유의 냄새, 무표정한 사람들. 나는 전생에 이 마을에서 산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스미즈 타카시 감독의 일본 영화 '환생'에서 어느 대학강사가 이야기한 단순한 은재기억의 작동일까?  

 

2010 년 9 월에 또 태국에 간다...... 나 혹시 미친 거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