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보고서 10

골든트라이앵글 (가을여행 보고서 10)

sarnia 2009. 11. 19. 13:19

골든트라이앵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했다. 치앙마이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시작된 굽이굽이 고갯길은 치앙라이 White Temple 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아마 길이 이렇게 험하기 때문에 가이드가 투어팀원들에게 혹시 차멀미를 하는 사람이 없는지 물어본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나는 초등학교 3 학년 때부터 통학 만원버스에 단련된 몸이라 멀미하고는 인연이 없다. 아주 오래 전 한국에 살 때 홍도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쾌속선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때 내가 탄 배는 동원호인가 하는 2 백 톤이 조금 넘는 철선이었다. 목포에서 흑산도를 거쳐 무려 일곱 시간을 항해해야 했다.

 

다도해를 빠져 나갈 때 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먼바다로 나가자 배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파도가 배 양 옆으로 높게 오르락 내리락 했고, 배가 아니라 무슨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 까지만 해도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던 승객들이 쥐약 먹은 병아리처럼 하나 둘 씩 앓아 눕기 시작하더니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린 환자들처럼 여기저기서 말 그대로 똥물까지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멀쩡한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거의 모든 승객들의 상태가 심각하고도 처참했는데, 나는 솔직이 멀미가 문제가 아니라 이 배가 이러다가 혹시 뒤집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겠구나했던 생각이 난다. 태풍이 오기 직전이라 그 정도로 바닷길이 험했다.

 

무슨 보물이 있나 하고 열심히 올라가는 오른쪽 브라운 숄더백이 팀원 중의 하나인 죠앤. 그는 호주 멜버른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다. 그런데 10 월에 두 달 째 장기배낭여행을 하고...... 휴학 중인가? 그건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착한 일을 아주 많이하고 극락왕생한 영혼들이다. 그러나 곧 극락이 너무 지루하니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이다. 저 그릇에다 마실 물을 달라는 건지 아니면 오줌을 싸놓은 요강을 비워달라는 건지 잘 구분이 안간다.   

 

아무튼 아홉 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원들 중에는 가는 길이 험하다고 차멀미를 할 초보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보다 나는 바로 내 옆 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입을 놀려대는 전형적인 푼수스타일의 중국계 (국적은 미국) 아줌마의 말대꾸를 해 주느라 출발부터 기분이 좀 어수선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이민 가서 사는데 며칠 전 쿠알라룸푸르에 사는 동생 내외와 자녀 둘을 데리고 태국에 놀러 왔다가 이 투어에 참가한 것이라는 둥 남편이 회계사라는 둥, 나는 물어 본 적도 없고 전혀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열심히 엮어나갔다. 하긴 내가 먼저 hi를 하고 인사를 튼 게 화근이었다.   

 

 

일행을 태운 도요다 투어 밴이 차앙마이와 치앙라이 사이의 작은 시골마을을 지나고 있다.  

 

가는 도중 신깜펭 온천과 White Temple 두 군데에서 20 분 정도씩 휴식을 취했다. 치앙라이 시내를 통과한 투어 밴은 오후 1 시쯤에야 치앙쎈 근처 ()콩강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길쭉한 보트를 타고 라오스 국경마을 단사오로 건너가기 위해서였다.      

 

 

여기가 바로 골든트라이앵글이다.

 

1975 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전하자마자 가장 먼저 불벼락을 맞은 것은 엉뚱하게도 뉴욕 경찰이었다. 맨하튼, 부롱스, 부루클린, 퀸스, 스테이튼 아일랜드 등 뉴욕 시 마약단속국 인력의 4 분의 3 이 범죄조직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마약거래를 눈감아주거나 아예 마약조직의 하수인 노릇을 한 혐의로 파면됐고 그들 대부분이 형사 입건되는 놀라운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이 인도차이나 전쟁을 수행할 당시 국제마약조직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도와 반공게릴라전에 참가했다. 마약조직의 무장 민병대는 태국과 미얀마(버마) 지역의 고산족 등 소수민족 사이에서 공산주의 사상에 동조하는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는 물론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 정보기관은 그 대가로 엄청난 양의 헤로인이 조직을 통해 미국 본토를 포함한 해외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고의적으로 묵인하고 방조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정부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용가치가 사라진 동남아 지역의 국제마약조직과 밀월관계를 단절하는 동시에 미국 국내에서 이들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던 부패경찰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였다. 뉴욕 경찰 부패는 당시 미국 정부의 비윤리적인 전쟁정책에서 구조적으로 파생될 수 밖에 없는 결과물이었다. 어쨌든 베트남전의 종료는 동남아 지역의 국제마약조직에게는 치명적인 상황변화였고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1940 년 대 말 중국 국민당군의 패잔병들이 태국 북부 국경지역 일대를 장악한 이래, 미국의 은밀한 지원아래 해가 지지 않는 마약 왕국으로 승승장구하던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마약조직들은 하루아침에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미국과 지역 정부군의 막강하고 조직적인 집중공격 앞에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투항과 죽음 중 양자택일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나중에 점심식사 후 잠시 틈을 이용해서 이라는 이름의 가이드와 전쟁과 관련된 골든트라이앵글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영어도 잘하고 식견도 풍부해 보이는 이 30 대 초반의 사내는 예상외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태국 정부의 관리대상인 가이드로서 그 역사의 추악한 실상들을 여행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 해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특히 쿤사에 대해서만큼은 애증이 교차하는 듯 했다. 쿤사 이야기는 내가 먼저 시작하기는 했는데, 내가 그가 죽은 날짜 (2007 10 26 )을 정확하게 대자 좀 놀라는 것 같았다.

 

농담 조로 이런 이야기를 해 줬다. 제 명대로 못 살고 총을 맞아 죽은 유명한 아시아인이 두 명 있는데 쿤사가 공교롭게도 그들과 죽은 날짜가 같아서 기억하는 것뿐 이라고……

  

 

나는 지금 그 역사적인 현장에 서 있지만 아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하고 평화로운 강변일 뿐이다. 

 

()콩강아, 너는 무엇을 보았는지 말 좀 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