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chindler’s List에 나오는 Oscar Schindler의 감동적인 대사가 생각난다.
“I could have done more”
포켓에서 만년필 한 자루를 꺼내 들며 “이 만년필을 팔아서 수용소장에게 주었으면 한 사람을 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 말이다. 모두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에서 주변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그는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를 고백했다.
사람이 아름다워 보일 때란 자기 양심에 솔직한 말과 행동을 할 때다. 이것을 진정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정성을 보이는 데는 높은 교양이나 착한 품성 같은 것이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성을 평소에 말과 행동으로 보이는데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용기다.
화가 나거나 의협심에 불탈 때 불쑥 하는 말이나 행동은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언행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그런 언행은 그냥 객기에 불과 한 것이다. 자기 언행이 아니라 임시 감정에 힘입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 자체를 근거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언행이 대체로 그 사람의 양심과 판단의 솔직한 표현인가를 가지고 그 사람의 품격을 판단한다.
임시 감정에 기대지 않고, 평소의 자기 양심과 판단을 기준으로 항상 언제 어디서나 솔직한 표현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라면 서로 오해할 필요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아직도 어떤 분들은 ‘평상시에 언제 어디서나 솔직한 언행을 구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정치를 못 하는 사람들’이라거나 ‘인간관계를 잘 못 하는 사람들’이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충고를 하는 분들에게 내가 다시 충고를 한 마디 하겠다.
당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던 과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문화적인 후진국일 수 밖에 없었다.
용기가 없으니 정직할 수가 없었고, 정직할 수가 없으니 자기 주관에 자신감을 가질 수도 없었다. 이런 군상들이 어느 계층에서나 우글거렸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더 심했다.
돼나 괘나 모든 인간관계를 하는데 ‘정치’부터 하려고 드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고 자기 주관이 아닌 인맥과 계보에 따라 졸졸 따라다니려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고 출신학교와 지역에 비정상적으로 땅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lemming 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Lemming이란 북구와 북미 지역에서 군집생활을 하는 설치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인간 노무현이 돋보이는 것은 보수-진보를 망라한 ‘lemming-culture’ 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는 진보-보수를 망라해 도처에 우글거리고 있는 lemming들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천재일우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기적적인 일이었고, 대한민국으로서는 행운이었다.
평소에 정직하려고 노력했던 그의 진정성을 먼저 알아본 것은 대한민국의 lemming들이 아니라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이었는지도 모른다. 샘물교회 심성민 씨 피살 직후 그가 밤잠을 자지 않고 노심초사하며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대변인 성명서는 일국의 국가원수로서는 하기 힘든 솔직한 말로 탈레반들에게 호소를 하고 있다.
인질석방을 조건으로 한 당신들의 요구에 대해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정직한 고백은 자국 교회의 분별없는 선교행위를 비판하는 절대다수 국민여론과 결합하여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청와대 성명서가 발표되고 며칠 뒤 탈레반 지도부는 인질처리지침을 완전히 바꾸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놀라운 성명을 발표하고 나머지 인질들을 전원 석방한다.
“The decision to free the pair had been made by the Taliban leadership council, headed by Mullah Mohammad Omar, as a gesture of goodwill towards the Korean people and South Korean diplomats negotiating for the hostages' release.”
나는 이 바보같은 사나이가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2007 년의 뜨거웠던 그 여름, 대한민국의 진정성이 열 아홉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고 믿고있다.
언젠가 (아마 그의 영결식 직전일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 남겨놓았던 비망록 중 일부를 다시 가져와 본다.
그 비극은 대한민국이 노무현이라는 ‘과분한 대통령’을 가졌던 데서 초래된 것이지요. 학맥과 지연을 토대로 한 편견에 의지하지 않고는 홀로 생각해서 가치판단을 할 능력이 결여된 병신 같은 인간들이 주류를 이루고, 그 함량미달 주류가 만들어 놓은 문화 속에 수 십 년 간 갇혀 있었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게 인간 노무현은 참으로 과분하고 사치스러운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과분과 사치’의 대가로 이런 비극이 초래된 것이지만 좌파건 우파건 노사모건 조중동이건 며칠이나마 착잡하고 황당한 심정으로 이 비극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참으로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윌 헌팅이 숀 교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비견될 만 한 행운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 행운은 이 바보 같은 사나이가 대한민국에 마지막으로 선사하고 간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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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무현의 죽음 소식을 들은 것은 밴쿠버 한인타운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였을 것이다. 그 날 mbc america를 통해 나오는 긴급뉴스를 보더니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유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저 아이들 나이 때도 대통령이 죽었다. 여대생과 여가수가 시중을 드는 비밀요정에서 술 마시다가 난데없이 총에 맞아 죽은 그의 죽음 또한 평범한 죽음은 아니었다.
그 때 나나 친구들은 기분이 너무 좋아 싱글벙글했고...... 그 날 그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진짜 슬퍼했다...... 그걸 보면서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이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2009 년 10 월 14 일 조국 김해 봉하마을 사자바위 위에서...... 그냥 미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