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가을여행 보고서 4

가을여행 보고서 4 (전주에서 장항선을 타다)

sarnia 2009. 10. 28. 11:09

 

 

전주는 나와 특별한 연고가 없는 곳이다. 굳이 연관이 있다면 외가가 전주 이씨 충녕대군파라는 것 정도다. 내가 이 도시에 처음 와 본 건 1981 년이다.

 

그때는 시내 한복판에 있던 고속버스터미널 앞길조차 여기 저기가 비포장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그 역사와 명성에 비해 참 낙후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고물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터덜거리며 한참을 달려 봉동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는데 거기는 보리깡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시골이었다. 대학 학보사 새내기 기자 시절 여름 수련회를 갔던 곳이다.

 

 

얼마나 오래된 사진이냐고? 글쎄 오른쪽에서 방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저 꼬마가 지금 한 마흔 살 쯤 됐을 것이니까...... 골동품 가치가 있다고 해야겠지.

 

사진 오른쪽 위에 써 넣은 '세미나를 마치고'라는 제목...... 영락없는 1981 년 모드다.

 

 

 

2009 년 가을에 다시 찾은 전주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깔끔한 새 도시로 거듭나 있었다. 나중에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봉동은 아예 전주시에 편입됐는지 그냥 시가지가 돼 버려 그 때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다.

 

 

역전다방? 전주답다. 아마 두 번 째로 많은 다방 이름이었을 것이다. 가장 많았던 이름은? 약속다방 

 

 

 

전주역에 내린 나는 우선 근처 편의점에서 천 오백 원짜리 캔 커피와 칠백 원짜리 해태 연양갱 하나를 사 들고 교도소 행 시내버스에 올랐다. 전동성당으로 가기 위해서다.

 

전동성당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 올리는 것이 전도연과 박신양의 영화 속 결혼식 장면일 것이다. 이 성당은 본당 자체가 사적지로, 사제관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가 박해 받던 시절 수 많은 신자들이 일단 전주 감영에 끌려와 잔혹한 고문을 당한 뒤 풍남문 밖 전동에 끌려와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 성당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유서가 깊은 오래된 성당인줄만 알았지 그런 슬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줄은 곳인 줄은 몰랐다.

 

아무튼 내가 전동성당을 먼저 찾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성당-경기전-한옥마을-객사-구 도청-맛집으로 이어지는 내가 짠 전주 도보여행의 출발지로서 가장 적당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오목대에 오르는 언덕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좀 작위적인 느낌도 들지만 보기드문 전경이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걸려있는 경기전은 한옥마을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경기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외에도 조선 왕 여섯 명의 초상화가 같이 봉안돼 있었다.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이 그들이다. 가장 우수했던 왕으로 평가 받고 있는 세 명과, 시대를 잘못 만나 바보 취급을 받고 있는 다른 세 명의 왕들이 절묘하게 한 자리에 모여 조선왕조의 평균 점수를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참, 이들 중 고종과 순종은 왕이 아니라 황제지.

 

한옥마을에 있는 어느 편의점과 이발소.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찜할만큼 예술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경기전 안내문의 망신스러운 문장력

 

경기전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내 마음을 좀 언짢게 했다.

 

첫째, 안내문을 새로 바꾸는데 몇 푼이 들기에 누더기처럼 저렇게 덧붙인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둘째, ‘일제강점기 시대 때라는 말을 보면 ’ ‘시대’ ‘라는 같은 의미의 단어가 세 차례나 반복돼 있는데 이런 빈약한 문장이 어떻게 교정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안내판에 나붙을 수가 있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외국어 안내문에 표현이나 문법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게거품을 무는 잔소리꾼들이 이걸 읽고도 왜 가만히 있는 걸까 당장 바꿔.   

 

 

전주에 가면 한정식을 한 번 먹어 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혼자 가서 한 상에 5 만 원이나 한다는 한정식을 시키는 건 약간 골 빈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 사는 후배를 불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무례한 짓이었다. 20 년 만에 만나는 후배를 밥상 구색이나 맞추어 달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비빔밥은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빔밥이야 비행기 탈 때마다 주니까......

 

참, 비행기 비빔밥 이야기 나왔으니 내가 눈치챈 이야기 하나 해보자. 대한항공 승무원이 외국인에게 식사주문을 받을 땐 비빔밥 소개를 아주 성의없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vegetable on rice 란다.

 

처음에는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나 했는데, 그보다는 한국인 탑승객들에게 돌아가기도 모자란 비빔밥을 가로채지 말고 다른 거 드시라는 유도주문이라는 걸 알았다.

 

승무원들의 그 갸륵한 동포사랑은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걸까?     

 

아무튼 한정식과 비빔밥은 포기하고, 결국 구 도청 주변에 있는 허름하고 소박한 가정식 백반집을 찾았다. 이름이 아마 지연식당이었을 것이다.

 

혼자이므로 식당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한 시 반쯤 식당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런지 식당은 비어 있었지만 생선구이는 갓 구운 것이 아니라 온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것인 듯 했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것을 불평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 백반 한 상 가격은 7000 , 6 불짜리 식사다. 식당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작년 초에는 5000 원 이었단다. 아마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 '에라 다 망해부러라'하고 2000 원이나 올린 거 같은데...... 

 

이 식당에서 나오다가 민방위 훈련에 걸리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이 날은 10 월 15 일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15 일에도 민방위 훈련같은 것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전주만 이런 거 하나?  

 

익산 역 앞 광장, 1977 년 폭파사고로 온통 쑥대밭이 됐던 그 도시. 그 때 이름은 '이리'였을 것이다.  

 

강현 님의 전용객차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장항선을 택했다. 익산에서 출발해서 군산-장항-대천-예산-온양온천-천안아산을 거쳐 용산으로 가는 노선이다.

 

과거에는 장항선은 장항에서 끝났지 군산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처음 이용해 보는 노선이다. 익산에서 군산까지는 새마을호의 객차 한 량을 내 전용차량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혼자 타고 갔다는 이야기다.

 

서해안의 낙조를 바라보며 기차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왼쪽 창가 좌석을 구입했는데, 낙조를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철길에서 바다가 너무 멀었다-_-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김연숙의 노래.  제목이 둔탁하고 가사가 좀 지루하기는 하지만 김연숙의 가창력과 목소리로 용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