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자본주의 숨 넘어가는 소리가 그 날 쌍둥이 빌딩이 붕괴해 내려앉을 때 보다 더 요란합니다.
언젠가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것은 제가 20 여 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예언한 바 있는데, 그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고 해서 전혀 기쁘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저부터 거기 깔려 죽을 판이니까요.
태국과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여행기 쓸 기분은 아니고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그냥 인사 겸 해서 글을 올립니다.
지난 해 3 월에는 부산, 10 월에는 강원도와 경주를 갔었는데 이번에는 광주-목포를 다녀왔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활약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지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보고 싶어 ‘빠르고 안전한’ 기차를 마다하고 목포 행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고속버스가 계속 경부고속도로로만 내려가더군요. 기사님에게 다가가서 ‘왜 서해안 고속도로로 안 가고 이리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막힌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내가 자리로 돌아가 앉은 뒤에도 기사님이 가끔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는 눈치였는데, 저 이상한 질문을 한 아저씨가 또 무슨 시비를 걸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기색이 보여 괜한 질문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천안-논산 새 고속도로를 거쳐 4 시간 10 분 만에 목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목회하는 학번 동기 O목사님이 흰색 아반떼를 가지고 터미널에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전복 회를 포함한 반찬이 두 차례에 걸쳐 약 50 가지쯤 나오는 바닷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자마자 내가 다짜고짜 목사님에게 두륜산 대흥사로 가자고 했습니다.
한 10 분 거리인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리더군요. 좀 미안하긴 했는데 차도 운동 삼아 가끔 장거리를 뛰어줘야 하니까 큰 실례는 아니다 싶었습니다.
가는 길에 고산 윤선도의 고택에 들렀습니다. 조선에 망조를 들게 한 두 세력이 있다면 저는 단연 인조 반정을 획책한 무리들과 정순왕후(영조의 계비) 패거리들을 꼽습니다.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두 세력의 공통점은 철저한 사대주의자들이요 반개혁주의자들이라는 점 입니다.
윤선도는 삼전도의 치욕 이후 출사를 거부하고 해남에 눌러앉은 인물로 해남 윤씨의 종가가 됩니다. 그가 주로 머문 녹우당과 기념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기념관에는 고산의 증손자이자 정다산의 외증조부인 윤두서의 그림들도 전시돼 있었습니다.
녹우당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대흥사로 갔습니다. 두륜산은 아담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배어있는 명산이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 입니다. 예전엔 해남에도 놀러 가 본 적이 있으니 이 절도 내가 전에 가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깊진 않지만 숲이 우거진 명산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대흥사의 호젓한 분위기는 매료될 만 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하기만 한 태국의 사찰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한국적인 멋을 지니고 있습니다.
산책로로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우리 옆을 지나갔습니다. 흰 색 캐딜락 CTS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 산책로는 일반차량의 통행이 금지된 곳이라는 것이 생각나자 혹시 저 승용차가 이 절 관계자의 차량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명산대찰의 산책로를 걷다 보니 무념무상 속마음까지 긍정과 자비로 채워집니다.
확실치도 않지만 설령 그 승용차의 주인이 이 절 스님인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교인이 선물로 준 30 만 불 짜리 밴틀리를 타고 다니는 목사님이 큰소리 뻥뻥치는 세상에서 10 만 불도 안 되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그 스님이야말로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하는 분인가 하는 경탄이 제 마음을 너그럽게 했습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이처럼 마음이 예쁘고 편안해 집니다.
두륜산의 호젓한 분위기에 매료된 나머지 이곳에서 너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 오후 서울에서 다른 약속이 잡혀 있어 내일 오전 중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원래 계획은 ‘어이 O 목사,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를 둘러본 뒤, 완도로 나와 강진 정다산 유배지까지 가볼까’ 할 생각이었으나 그건 무리였습니다. 다시 목포로 돌아와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O 목사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혼자 광주까지 갔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망월동 국립묘지를 들렀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곳이 국립묘지로 조성된 후에는 가 본적이 없습니다.
고속터미널에 내리니 광주는 20 여 년 전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었습니다. 친절한 인포메이션 언니의 안내에 따라 버스 정류장에서 518 번 버스를 타고 국립묘지까지 갔습니다. 이 518 번 버스는 상무대를 출발해 시외버스터미널-광주역-금남로-문화전당(옛 도청)-전남여고-전남대를 거쳐 갔는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이 도시에 와 본 게 언제더라. 1981 년 7 월 31 일 밤 용산 역에서 한 떼거리의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청년들이 지금은 없어진 완행열차의 한 칸을 거의 전세 내다시피 하여 광주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다음 날부터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 기장청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새벽에 광주역에 도착한 우리들은 아침식사도 거른 채 광주역에서부터 계림국민학교(당시) 근처의 어느 교회까지 침묵행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서 너 차례 이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국립묘지에는 때마침 여수에서 참배 온 초등학생들이 교사들의 인솔에 따라 분향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 이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초등학생들보다는 조금 먼저 분향소에 도착했는데, 곧바로 묘역으로 올라서서 세워진 비석들을 한 기 한 기 바라보며 고인들의 영정 사진과 비문을 읽는 것으로 분향을 대신했습니다. 일부러 찾아간 것도 아닌데 두 번째 열에 안장된 류동운 열사(한신 79 학번, 80.5.27 도청에서 전사)의 묘 앞에 서게 됐습니다.
분향을 마다하고 묘역으로 바로 올라선 이유는 국립묘지에 들어서서 걷는 동안 내내 감정이 복받쳐 올라 한 군데 오래 머물러 있기가 불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합동분향소 앞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메가폰으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교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오른 쪽에 있는 기념관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2 층 규모의 기념관은 아담하고 깨끗하긴 했는데, 역사박물관으로서는 좀 수준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이나 활자를 통한 설명도 중요하지만 보다 다양한 유물전시와 함께 당시 현장과 시대배경 풍물 등의 입체전시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타임머신’ 개념의 박물관으로 재구성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이 정신사적인 면에서는 ‘1948 년 남한 단독정부수립사건’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기념관이 아닌 역사박물관을 건립해서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좀 말이 길어졌습니다. 내 무리한 가이드(?) 부탁을 들어준 O 목사님, 그리고 자리를 함께한 후배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추신: 고국을 오랫동안 못 가보신 분들을 위한 퀵 안내.
- 집집마다 toilet에 비데가 설치돼 있다.
- 셀폰 문자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결재한다.
- 호텔의 블라인드는 리모콘으로 작동된다.
- 세븐 일레븐과 Family Mart가 구멍가게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 시내버스 지하철 전철 공중전화 등은 모두 교통카드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시내버스 지하철을 타고 내릴때는 교통카드를 스캐너에 댄다. 남들이 지갑을 댄다고 빈 지갑을 대면 안되고 반드시 교통카드를 넣고 대야한다. 전화 걸 때는 공중전화를 이용할 것. 공항에서 빌린 셀폰은 받을 때는 공짜인데 걸 때는 졸라 비쌈)
- 우래옥 평양냉면 9000 원, 오장동 함흥냉면 9000 원, 종로3가 생선구이백반 5000 원, 짜장면 4000 원, 택시기본요금 1900 원, 시내버스 교통카드결재 900 원 현찰내면 1000 원, 노점 리어카에서 파는 튀김 3 개 1000 원 순대 또는 떡볶이 한 접시 2000 원,
- 식당에는 무료 커피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자판기 위에는 100 원짜리 동전을 담은 그릇이 준비돼 있는데, 100 원 내라는 말이 아니라 거기서 100 원짜리를 하나 집어 커피를 빼 먹으라는 뜻 임.
- 서비스 분야와 관공서 등은 고객에게 엄청 친절하다. 젊은 세대는 미소와 친절이 몸에 배어 있는 듯 했고, 4-50 대는 분위기에 휩쓸려 마지못해 친절한데 그런대로 봐 줄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