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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진 씨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 주세요

sarnia 2008. 6. 7. 07:35

거꾸로든 바로든 역사란 용기와 비판의식을 겸비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져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처음 하는 얘긴데 나는 묵묵히 자기 맡은 일만 충실히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말은 별로 믿지 않는 편입니다.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사람들, 흩어져 있는 에너지와 상호교감을 조직하고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일단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과감한 공개발언과 행동을 통해 검증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새 세상을 열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한국 사회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배가 산으로 올라 갈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역동성이 지난 20 년 간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일단 이세진 씨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품성의 바탕은 싹수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세진 씨에게 무엇인가를 설득해서 생각을 바꾸라고 권고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세진 씨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 분의 과감한 행동에 대한 동정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털어 놓고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하겠습니다.

 

나는 우리도 용서 못했던 조승희를 용서한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처음 봤을 때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조승희가 누구지했던 것입니다. 1 초 뒤에야 그 조승희가 버지니아텍 총기난사사건의 주역 그 조승희 라는 것을 떠 올리고 실소와 함께, 잠시 이세진 씨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국을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도록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이세진 씨가 아직 그 나라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긴 단군이래 가장 열린 정부로 평가 받는 당시 노무현 정부조차도 뚱딴지같이 사과사절을 미국에 보내겠다고 했을 정도니 한국에서만 줄곧 살아온 대학생 이세진 씨가 다민족 이민국가 미국사회를 한국식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거 한가지만 보더라도 그 분이 미국에 대한 짝사랑과 고마움으로 일반상식을 뒤 엎을 정도의 새 사상을 엮어내기에는 그 인식의 토대가 아직 지나치게 소박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 입니다. 반복해서 하는 말이지만 용기는 가상하고 문제제기를 할 줄 아는 품성의 바탕은 훌륭합니다.

 

그는 또 이렇게 묻습니다. “김정일이 핵을 쏘고 300 만이 굶어 죽을 때는 왜 촛불을 들지 않았습니까?” 이거 참 난감한 질문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은 대답할 가치 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질문 자체가 주권회복과 시민권력 운동으로서의 촛불문화제와 전혀 관계없는 범주의 오류일 뿐 아니라 극우의 이념공세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세진 씨 뒤에 극우 배후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나는 이세진 씨의 뒤에 배후가 있느냐 없느냐 따위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유치한 발상은 한 적도 없습니다. 만일 촛불들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촛불을 끈 뒤 보따리를 싸 가지고 뉴라이트인지 뭔지 하는 데로 이사를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냥 그 분이 그 분 주장을 할 땐 그 분 입장으로 살짝 건너가서 들어주고, 자기 이야기 할 때가 되면 잽싸게 되돌아와 자기 소감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다만 이세진 씨에게는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문제를 북한 당국의 탓으로만 돌리는 신념이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학도로서 과연 타당하고 객관성 있는 자세인가부터 다시 돌아보기를 희망합니다. 2 6 월 항쟁이 진행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엉뚱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렇게만 이야기 합시다. 내가 보건대 예나 지금이나 북한 당국이 가장 바랬던 건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 그래서 국가의 안전을 보장 받고 치명적인 금융제재에서 벗어나 인민들의 생활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적어도 핵실험 전까지 북한의 대화요구를 일관되게 거부하며 위협과 모욕으로 그들을 좌절과 공포로 몰고 갔습니다. 엄청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작정을 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는데도, 그 위세에 눌려 주변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말려주는 나라가 없을 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구책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 탈북자가 쓴 이야기 책 한 권 읽고 이해하고 분노하기에는 한반도 현대사는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복잡합니다.

 

인식의 오류와 편견과 감성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라는 치명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세진 씨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적어도 세상을 사는 태도와 용기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본받을 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장점이 있으면 칭찬해 주고 들어주고 이야기 해 주는 여유조차 없으면서 우리가 소통부재의 이명박 정권집단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혼자 떨면서 팻말을 들고 서 있는 한 청년에게 욕설을 퍼 붓고 지나간 분들의 행동은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거기다 그런 분들이 낫살이나 먹었다면 좀 한심한 느낌까지 보태지고요.

 

불통과 독선, 거짓말 3 대 국정지표로 삼고 있는 이명박 정권 집단과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합니다. 그 자들은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자기들이 부수고 뜯어놓은 경복궁 기왓장들을 모아 놓고 폭력시위대가 문화재를 훼손했다고 덮어씌울 증거자료로 활용하는 인간들입니다. 한마디로 인간말종이나 꾸며낼 수 있는 참담한 거짓말이지요. 참담한 거짓말 하니까 또 하나 생각나는데 어제 백분토론에 나와 맥도날드가 내장과 곱창이 섞인 월령 30 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사용한다는 모두 난생 처음 듣는 쌩구라를 푼 임 모씨 덕분에 뉴라이트가 맥도날드에 의해 고소까지 당하게 생겼군요. 거 참…… 여러 가지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세진 씨의 말대로라면 아마 앞으로도 며칠간 홀로시위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의 신변안전은 물론이고, 발언권과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촛불행진을 하다가 이세진 씨를 보거든 아무 말 도 하지 마세요. 그냥 웃음띤 얼굴로 눈인사하고 지나가세요. 정 무슨 말이 한마디 하고 싶거든 따뜻한 격려의 인사말만 한 마디 하세요.

 

이세진 씨, 힘 내세요. 당신이 혼자는 아니라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