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지난 3 일 열린 공화당 아이오와주 Caucus 에서 그가 대통령 후보 지명전 선두주자로 부각된 것은 우려할 만 한 일입니다. 침례교 목사 출신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 마이크 허꺼비 (Mike Huckabee)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21 세기의 비극은 대부분 종교적 ‘고백의 언어’와 과학적 ‘인식의 언어’ (정진홍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를 구별하지 못하는 reading problem을 가진 지도자들과 대중집단에 의해 야기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현대 문명사회 최악의 재앙이요 동시대인들이 함께 풀어가야 할 난제 중의 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같은 주에서 열렸던 민주당 Caucus 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오바마 가 승리를 거뒀습니다. 양당의 아이오와 Caucus는 장차 미국 사회 안에서 공존이 불가능 해 보이는 두 ‘사상’간의 대립이 더욱 첨예화될 조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길한 징조입니다. 한 쪽은 앞으로 더 힘차게 나아가려 하는데 또 다른 한 쪽은 거꾸로 뒤로 돌아 뛰어가고 있으니 미국이라는 나라가 곧 ‘능지처참’이라도 당할 것 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허꺼비는 히브리 경전에 나오는 창조신화를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구의 역사가 6 천 년이고 하나님이 24 시간을 하루 기준으로 6 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는 전형적인 Bible 문자주의자입니다. 그가 어떤 내용을 믿건 그 믿음이 개인 신앙 안에서 머무를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개인적인 믿음을 공립학교 과학 교육과정의 정식 커리큘럼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든가, 이런 사상을 제도에 반영시키겠다는 작정과 함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다면 문제가 다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병적인 혐오감 역시 증오와 편견으로 다져진 이런 근본주의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허꺼비는 공화당의 전통 주류와는 물론이고, 과학과 종교 문제에 대해서 뚜렷한 지식이나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는 호칭이 좀 과분했던 부시와도 구별되는 인물입니다. 백인, 침례교인 공화당원 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태반을 차지하는 아칸소주 시골 침례교회 목사라면 몰라도 초강대국의 대통령이라니 모골이 다 송연 해 지는 일입니다. 미국의 지식인 사회는 허꺼비의 부각을 ‘현대 과학 문명과 이성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마 가장 먼저 Creation Science Association (창조과학회) 나 Discovery Institute (지적설계론 설계단체) 같은 종교활동기구를 정부예산으로 공식 지원할 방도부터 마련하려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왕 창조과학회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단체에 대해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이 단체를 가리켜 ‘창조구라회’ 라든가 ‘양아치과학회’로 부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나 저는 그런 매너 없는(?) 야유에는 동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신자들 중에는 여러 가지 엉뚱한 활동으로 스스로의 종교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창조과학회 활동가들만큼 기독교와 Bible을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집단도 드물 것 입니다. 좀 심한 말 같지만 저는 그들이 박사학위를 반납해야 마땅할 정도로 과학자로서의 윤리를 져 버리는 활동을 반복함으로써 많은 기독교 신자들의 정신세계를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신학자나 성직자가 아닌 자연과학자의 타이틀을 가지고 전문적인 반론을 펼 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일반신자들을 상대로 과학과 종교를 동시에 오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정작 과학계에 끼치고 있는 위해가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고 합니다. 과학계에서 그들을 상대조차 해 주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론과 진화론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창조론자들 중 일부가 히브리 경전의 창조신화를 토대로 쓴 자기들의 소설을 들이대고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 입니다. 소설을 썼으면 신춘문예 같은데 제출해 문단에 진출할 길을 모색하든가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과학계 문 앞에 와서 난리를 피우니 좀 어이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런 분위기니 과학자들이 그들의 주장에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건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현상에 대한 관찰-가설설정-실험과 연구를 통한 증거수집-이론 체계 정립-반증되면 기존 이론 폐기 후 재 실험, 재 관찰-새 이론 체계 정립 등의 과학 과정의 기본 조차 갖추지 않은 이론을 이론으로 인정할 수 없는 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미국사회 안에 이성적 가치관이 주류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오와주 공화당 Caucus는 미국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미 1988 년 이후 노골적인 정치세력화를 천명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실제로 직접’ 유력 정당의 헤게모니를 접수하고 집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더미 같은 연방부채와 무역적자 속에 장기불황마저 예측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보수진영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반동적 정치현상은 그들의 집권 가능성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이미 우려할 만 한 사태입니다. 이 나라의 반쪽이 도대체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는지 앞으로 1 년,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추신: 구글에 멋진 야유가 올라왔군요. 소개합니다 (일부 문법과 철자에 오류가 있으나 교정하지 않고 올립니다).
Republican Rev. Mike Huckubee is our salvation for this country. Thanks be to God the almighty savior. Praise the Lord our God.
GOD BLESS
1 월 4 일 구글에서 Posting ID: 528673524
“점성술이 천문학을 대체할 수 없고 마법이 약학을 대체할 수 없듯이 창조신화가 진화론을 대체할 수는 없다”
Francisco Jose Ayala biologist and philosophe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