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결과는 예상했던 대로다. 치명적인 윤리적 결함을 안고 있는 후보가 보란 듯이 압승을 거두고 말았다. 주가조작과 돈세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체제 윤리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범죄다. 범죄의 질로 따지면 위폐범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경우 그 형량이 2급 살인이나 미성년자 성폭행과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00 % 에 달하는 유권자들이 이런 흉악 범죄용의자의 아가리에 나라의 운명을 통째로 처 넣고야 말았다.
지금 문제는 ‘민주진영의 권력’을 수구냉전세력에게 도로 빼앗겼다는 것 따위가 아니다. 우리가 경악하는 것은 한국 사회 일각에 흐르고 있는 심상치 않은 광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 이래 주로 보수 집단에서 계기가 있을 때 마다 나타나는 이런 광기의 편린은 이제 그냥 두고 볼 수준을 넘어섰다. 광기란 단어는 사회과학적으로 개념화된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한 국가나 사회집단의 불특정 다수가 기본적인 윤리의식이나 규범조차 상실한 채 어떤 주장이나 이념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면 이런 현상을 표현할 단어로서 이처럼 가슴에 와 닫는 말도 드물 것이다.
독일 동부 공업도시들의 슬럼가나 모스크바, 생 페테스부르그의 거리를 휩쓰는 스킨헤드무리의 집단행동 역시 최소한의 상식과 보편 윤리를 벗어난 이념을 공유하고 이를 공공연하게 정치적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그늘을 반영하는 사회적 광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교육정도나 소득 수준, 정서지능이 낮은 일정한 연령층 (10 대 후반) 집단이라는 점에서 이00 씨를 지지한 한국의 유권자들과는 그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이00씨를 지지한 한국의 유권자 집단은 1930 년 대 초반 히틀러와 나찌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다수의 독일 국민들과 유사한 ‘사회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이 두 집단은 어떤 정치세력을 지지하는데 있어서 윤리적 저항감을 무릅쓴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윤리적 저항감이 극복되는 경지라면 일반 대중이 전위조직의 이론지도자 수준의 신념가들이 아닌 이상, 종교에 필적하는 초이성적인 심리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의 능력과 윤리성은 별개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대통령 중 하나인 클린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클린턴의 경우라면 이 지적이 타당할 수 있다.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사생활문제다.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는 실격일지 몰라도 공인으로서의 업무윤리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수신제가치국 어쩌구 하는, 영역별 특수성에 대한 개념분리가 덜 된 고대시대에 나온 격언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시 공화당 강경파의 클린턴 탄핵 시도가 얼마나 멍텅구리 짓이었는가를 잘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BBK 사건은 사생활과 관련된 윤리문제가 아니다. 이 00 자신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시장경제의 룰을 배반한 사회적 범죄다. 그리고 유력한 사회적 범죄 용의자가 이 자유시장경제를 체제의 근간으로 하는 국가조직의 수장으로 당선됐다. 이00 씨가 기가 찰 정도로 뻔한 거짓말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라리 ‘성매매업소에 들락거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면 이렇게 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00 씨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00 정권아래 펼쳐질 한국의 장래는 군사독재시대보다도 암담하다. 신자유주의자들의 권력은 20 년 전에 경험한 군사독재정권보다 훨씬 가혹하고 잔인하면서, 용의주도하고 교활할 것이다. 가진 자들만을 아예 내놓고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집단은 이 나라를 순식간에 양육강식의 피비린내나는 아수라판으로 만들어 갈 것이 분명하다. 돈, 권력, 지식 이 세 가지 클럽 중 한 군데도 가입하지 못한 약 80 % 에 달하는 국민들은 가능성과 사회적 보호망 조차 제거 당한 채 상대적 빈곤과 멸시 속에 소외감을 씹으며 처참한 인생을 대물림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빈 말이라도 자기들 걱정을 해 주던 ‘반미좌파’들의 무능한 얼굴들을 가끔씩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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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써놓고 보니까 김동길 씨나 조갑제 씨의 독설보다는 훨씬 부드럽군요. 이래서 피는 못 속이는가 봅니다. 그리고 후보 실명 안 밝혔으니 선거법 위반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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